백승종의 '역사칼럼'
서구에는 지역 아카이브에 관심이 깊은 주민이 적지 않다. 그들이 지역 아카이브에 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였다. 구글을 통해서 필자는 미국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보았다.
“브록 보든(2011년 1월 17일): 여러 해 전부터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자료를 직접 수집하는 것이 취미인 사람입니다. 지금까지는 자료를 제 집에 직접 보관해 왔는데요. 앞으로는 모든 시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적인 장소에 보관하고 싶습니다.”
보든씨처럼 지역의 문서와 기록을 수집하는데 열성인 시민이 많을수록 지역 아카이브는 빨리 발전할 것이다. 그의 소망대로 누구나 편리하게 지역 자료를 이용하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그곳이 바로 지역 아카이브가 될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여러 주민이 자발적으로 오랜 시일에 걸쳐 모은 지역 관련 자료가 한데 모이면 지역 아카이브가 시작될 수 있다.
“바바라 혼비(2009년 7월 15일): 지역 아카이브 운동은 공동체가 자신의 기록을 직접 관리하고 보존하도록 장려하고 도와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사는 지역공동체와 여러 단체는 저마다 다양한 문서와 디지털 파일을 모아서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지요.
그것을 우리는 그저 단순히 '아카이브'라고 부르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또는 우리의 존재 증명이라고 보았으면 어떨까 합니다.”
혼비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역 아카이브는 지역 안에서 여러 개로 공존할 수도 있을 것같다. 또, 거기에 수집보관할 문서도 반드시 종이로 된 것만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 사진이나 디지털 형태라도 무방하겠다.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지역 관련 자료를 우리가 과거의 흔적으로만 여기지 말고, “우리” 곧 지역주민의 현재로, 또는 지역 정체성 자체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혼비씨는 지역 아카이브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였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하워드 (2007년 12월 3일): 지역 아카이브는 지역의 민간 조직이죠. 영리단체도 아니고 정부 소속 단체도 아닌 민간아카이브가 좋습니다. 지역사회의 이러한 민간조직은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야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 권력에 맞설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역 아카이브는 주정부가 후원하는 기록보존소와는 성격이 달라야겠지요. 지역 아카이브는 지역공동체의 이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공기관이 진정한 의미에서 다원주의에 충실한 조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필자는 하워드씨의 견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는 유럽의 여러 도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지역 아카이브를 떠올리고 있다. 공권력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한, 자율적인 조직으로서 지역 아카이브이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과는 무관하게 지역주민의 정치, 경제 및 문화적 이익에 기여하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정치 권력과의 일전도 사양하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으로서, 말하자면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지역 아카이브 운동을 지향하는 이가 하워드씨이다.
그의 견해를 따르지 않을 사람도 우리 가운데 적지 않겠으나, 필자는 그의 정의가 매우 미래지향적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백승종, <주민 스스로 풀어가는, 주민과 함께 하는, 지역 아카이브 방법서설>(2021년 7월 이천시에서 발표할 내용의 일부)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