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세종의 선택'(백승종 지음, 사우, 2021) 
'세종의 선택'(백승종 지음, 사우, 2021) 

세종은 엄연한 역사적 존재였다. 내 말은 그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축에서 활동한 현실 정치가였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나는 그의 언행을 선의로든 악의로든 함부로 과장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맨눈으로 그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고 싶다.

왕이 이룬 모든 업적을 빠짐없이 소개할 필요도 없으며, 그의 인간적 면모를 샅샅이 알아야만 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망라주의라든가 백과사전적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왕의 전기는 더더욱 아니다.

여기서는 왕이 스스로 중요하게 평가한 몇 가지 사업을 검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시대의 특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보기에, 세종은 백성을 살찌우는 부민(富民)에 초점을 두고 경제정책을 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인재를 키우고 발탁하는데 주력하였다고 여긴다.

편의상 나는 그것을 ‘택현(擇賢)’이라고 부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정책은, 왕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유교적 문명화의 일환이었다. 나는 그렇게 본다.

세종은 참 특이한 인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를 누구보다 깊이 신앙하였으면서도, 공인으로서는 성리학의 깃발만 세웠다.

그러나 그는 후대의 성리학자들처럼 경직된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그 덕분에 매사를 유연하고 실용적으로 처리하였다. 후대의 성리학들은 그를 전폭적으로 칭송하였으나, 사실은 왕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성종 이후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지나치게 순수를 고집하다가, 세종시대의 실용주의로부터 너무 멀어져 버렸다. 세종이 바랐던 것 이상으로 그들은 철저하게 성리학에만 매달렸고, 그러자 전에 없이 많은 폐단이 각 방면에서 일어났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문명화의 저주’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다.

※출처: 백승종, <<세종의 선택>>(2021, 사우)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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