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서평'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권은중, 메디치미디어, 2021)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권은중, 메디치미디어, 2021)

1.

음식이라면 단연코 이탈리아를 손꼽습니다. 그중에서도 “미식의 수도”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가 있지요. 볼로냐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시민도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분이 많아요. 칼국수와 라면 잔치국수에 비빔국수까지 국수라면 다 좋아하는 우리라서 스파게티와 쉽게 친해진 것 같은데요.

스파게티의 대명사가 “스파게티 볼로네제”지요. 볼로냐 소스를 얹은 스파게티라는 거죠. 돼지고기를 갈아서 토마토와 함께 만든 고기 소스가 볼로네제지요. 취향에 따라서는 쇠고기와 함께 섞기도 합니다만 기본은 그렇습니다.

그런데요, 막상 볼로냐 사람들은 그런 스파게티를 혐오한다고 해요. 이 책의 저자(권은중)가 살짝 알려준 바인데, 볼로냐에서는 반드시 직접 뽑은 생면에 볼로네제를 얹어서 든다고 합니다. 언젠가 볼로냐 시장님이 “스파게티 볼로네제”는 가짜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신 적도 있답니다. 허허!

2.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은 볼로냐를 다른 맥락에서도 기억하실 듯해요. 이곳은 세계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달한 곳이고요, 그래서 생활물가도 다른 도시보다는 훨씬 낮답니다. 이탈리아는 실업률이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볼로냐는 그렇지 않대요. 여성들의 취업률도 가장 높은 편이라는데, 협동조합이 발달해서 고용효과가 높기 때문이라지요.

볼로냐대학교도 들어보신 적이 있을 듯합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창립된 대학교였지요. 그 당시에는 유럽에서 이탈리아가 가장 선진국이었으므로 유럽 최초의 대학이기도 하였고요. 그런데 그게 아주 개방적이어서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민도 입학이 허용되었다지요. 운영 방식도 독특해서 일종의 조합/공동체를 뜻하는 라틴어 이름(universitas)을 붙였다고 하지요.

<<볼로냐>>에는 당연히 그런 이야기도 재미있게 소개되어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볼로냐의 맛, 향기, 빛깔을 자세히 파고 들어갑니다. 저자는 볼로냐의 매력에 흠뻑 젖은 분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맛이라면 우선 스파게티, 돼지고기, 그리고 토마토에 관하여 정말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해줍니다.

저는요, 돼지고기로 만든 살라미/살루미 이야기가 퍽 인상적이었어요. 이야말로 이탈리아 음식의 대표거든요. 파스타와 피자는 중세 이후에 이탈리아에 들어온 거랍니다. 파스타는 아랍의 영향으로 탄생한 요리고요, 피자는 대항해 시대에 신대륙에서 토마토가 들어온 다음에 시작된 요리라지요. 그에 비해 살라미/살루미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탈리아반도에서 맥맥히 전해지는 그야말로 전통요리고요.

여기서 일일이 다 소개할 겨를은 없으나 치즈의 향기, 와인(포도주)과 커피의 향기로운 풍미에 관하여도 이 책은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게다가 볼로냐 시민의 삶을 풍요롭고도 우아하게 만드는 빛깔을 더해주는 붉은 벽돌 이야기 등도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3.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는 그래도 소개하고 싶어져요. 여성에 관한 것인데, 13세기부터 볼로냐대학교에서는 여성에게도 박사 학위를 주었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18세기가 끝날 때까지도 여성에게 대학의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볼로냐에서는 여성을 교수로 초빙하기도 했대요.

유럽 각국에서 볼로냐대학교에 유학 온 학생들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여성 학자들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입니다! 중세 이탈리아는 참으로 개방적이었는데요, 여성에게 학위를 수여한 대학교는 볼로냐를 시작으로 두 군데가 더 있었다고 하는군요.

중세 이탈리아는 로마교황청이 상징하는 억압과 차별의 본고장이기도 하였고, 그와는 정반대로 볼로냐처럼 자유와 평등을 선구적으로 구가한 도시가 존재하는 역사의 실험실이기도 하였어요. 퍽 흥미로운 나라였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4.

저자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볼로냐를 유독 깊이 사랑하는 듯합니다. 그 마음을 저도 어렴풋이 이해할 법합니다. 19세기 말에 러시아의 작가 파벨 무라토프는 《이탈리아의 이미지》에서 볼로냐를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고 하거든요.

“볼로냐는 복잡하지도 않고 경쾌하며, 눈을 즐겁게 하는 가벼운 무엇인가를 가진 곳이다.

이 도시의 시민은 가슴에 기쁨이 가득하고 신체 또한 건강해 보인다. 이 도시를 둘러싼 것은 기름진 곡창 지대요, 훌륭한 포도주가 될 아름다운 포도밭이 아닌가. 풍성함과 다양함이란 점에서 볼로냐와 겨룰만한 도시는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무라토프의 눈에 비친 볼로냐는 향기로운 요리와 멋진 술이 넘치는 지상의 낙원이었지 싶어요. 그 점은 21세기의 한국인 권은중에게도 변함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저도 꼭 볼로냐에서 두어 달쯤 살아봐야겠군요. 이 책은 우리가 잘 몰랐던 볼로냐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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