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국민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아버지가 선술집을 열고 국수와 막걸리를 팔았던 진안군 백운면 소재지 원촌의 술집 옆에는 이발소가 있었다.
내 또래 친구가 있었고 내 어린 날 머리를 깎았던 그 이발소는 우리가 임실로 이사를 가기 전에 서울로 이사를 갔고 그 뒤의 소식은 모른다.
그 뒤 우여곡절 끝에 전주라는 곳에 터를 잡고 이용원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미용실이 늘어나면서 내가 다니던 이용원이 금세 사라져갔다. 이용원 찾기 삼천리를 접고 지금은 단골 미용실을 정해 놓고 다닌다.
신평의 아랫 이용원.

이름이 좋아서 들어갔다. 그런데 문이 닫혔거나 파리나 날릴 줄 알았는데 손님이 둘이나 있었다. 소재지 마을이 삼백여호가 되었던 시절에는 이발소가 세 개가 있었고 종업원을 몇 명 두고 했었다는데 지금은 열명에서 스무 명쯤 손님이 온다고 한다.

1970년대 풍경에서 더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이용원에 그 당시에도 쓰던 포마드 병, 아쉬운 것은 이발소에서만 볼 수 있는 밀레의 만종이나 시골집 풍경의 액자, 아무리 살펴보아도 찾을 길이 없었다.
고추가 많이 생산되던 시절에는 이발소 문을 못 열 정도로 온 길가에 마른 고추 포대가 쌓여 있었다는데 다 옛날이다.
고향 백운 소재지 원촌에서 한 시절을 보낸 내가 잠시 방송 촬영차 머무는 신평 소재지의 원촌에서 이름은 같지만 풍경이 전혀 다른 원촌의 이발소에서 이미 흘러간 시절을 서로 나누는 손문국 씨와 나, 추억은 역사가 되고 삶은 현실이다.
그 추억을 어제 일처럼 회고하는 사람들, 그 또한 꿈속의 나그네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사진·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