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정말 좋은 책이다. 개체든 사회든 결국 에너지를 얻는 것이 생명을 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 현대의 에너지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석유다. 그러니 석유가 현대사를 관통하는 열쇳말의 하나가 될 것은 당연하다.

석유가 전쟁물자로서 세계 경제의 전면에 등장한 2차대전부터, 거래의 주도권이 중동 산유국으로 넘어간 70년대를 거쳐, 미국에서 셰일혁명이 일어나고 파생금융상품으로 변신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한 가닥의 실로 완벽하게 꿰어 보여준다.

데니얼 예긴이나 바츨라프 스밀의 저작에 비하면 물론 소품이지만, 쉽게 읽히면서도 얻을 수 있는 지식이나 통찰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복잡한 역사를 간결하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재능이 무척 뛰어나고, 경제와 역사를 보는 시각 역시 깊은데, 그런 재능과 통찰을 완벽하게 뒷받침하는 글 솜씨마저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접목되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미덕이다.

닥터 셰퍼드, 죽은 자들의 의사

시체를 다루는 것이 직업인 검시관으로 평생을 보낸 병리전문의의 회고록.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개인사와 엮이고 아름다운 문체가 더해져 한 편의 예술영화처럼 흘러간다.

오래도록 현장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이 제도의 변화에 밀려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 의사로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일에서 받는 트라우마가 축적되는 과정, 노화에 대한 생각, 개인적 행복과 목표의 추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등 크고 작은 삶의 숙제들을 먼저 풀어나간 사람의 답안지를 엿보는 느낌으로 읽었다. 누가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의사라면 반드시 권하고 싶다.

리아의 나라  

<서재 결혼시키기>로 잘 알려진 앤 패드먼의 작품. 난민으로 미국에 발을 디딘 몽족(Hmong) 소녀가 뇌전증으로 식물인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문화 차이와 의사소통의 문제가 얼마나 넘어서기 어려운 장벽이었는지 끈질기게 파고든다.

미국에서 초대형 베스트셀러였고, 개인적으로 의료현장에서 의사소통의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각기 다른 문화 사이의 이해가 점점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되어 복간을 염두에 두고 읽었다.

깊이 생각해볼 지점이 많았으나, 복간은 포기했다. 소녀에게 벌어진 일이 문화차이로 보기에 너무 극단적인 데다, 저자가 소수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옹호하느라 자칫 비과학으로 흐를 수 있는 해석들을 많이 써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몽족의 역사와 신화, 문화 등을 매우 성실하게 취재하고 공들여 서술했으므로 관심있는 분은 읽어볼 만할 것이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후성유전학에 대한 생물학적 사실들이 정리되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유사과학에 가깝다. 앞의 두 챕터 읽고 패스. 출판사는 좋은 정신의학책을 많이 내는 곳인데, 책 선정에 조금 더 신경쓸 필요가 있겠다.

청소년을 위한 정신 의학 에세이 

뭔가 핀트가 안 맞는 느낌.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했다. 삽화를 넣는다고 청소년 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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