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록의 '만언각비'

벨기에를 대표하는 브랜드 ‘고디바(Godiva)’.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머뭇거리다가도 한 번 맛보게 되면 그 맛을 못 잊어 종종 사먹게 되는 전설의 초콜릿이다. 고디바는 나체로 말을 올라탄 레이디 ‘고디바’를 심벌로 사용한다. 이 즈음 고디바하면 초콜릿보다는 단연 고디바 부인이 먼저 떠오른다. 왜냐고? 자신의 안위보다 시민과 농민을 먼저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씨 때문이다.
어느 초겨울 이른 아침, 한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하얀 말 위에 고개 숙인 채 앉아 있다. 말이 가는 방향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수심에 찬 얼굴이다. 긴 머리로 벗은 몸을 가까스로 가렸지만, 부끄러움을 감추기는 어려운 듯싶다. 주변을 살펴보니 구경꾼은 아직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도대체 이 여인은 왜 나체로 말에 올라 길거리를 떠도는 것인가. 그 영문이 궁금하지 않은가. 이 여인 이름은 바로 고디바. 그녀가 부끄러움을 견디고 알몸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닌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남편 때문이었다. 고디바의 남편은 영국 코번트리의 영주였다.
남편 레오프릭 백작은 소작농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거두고 있었다.(11세기 영국은 바이킹 족의 하나인 데인족(Danes)의 지배를 받았는데 데인족 국왕 크누트 1세가 각 지역 영주들로 하여금 농민들에게 고액의 세금을 거둬들이게 했다.)
알몸으로 거리 일주, 가혹한 세금 낮춰
착한 마음씨를 가졌던 고디바는 높은 세금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측은해 하며 안타까워 했다. 고민 끝에 남편에게 세금을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레오프릭은 이를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남편은 한참을 거들먹거리다 선심 쓰듯 요구한다.
“당신이 벗은 몸으로 거리를 한바퀴 돈다면, 내가 세금을 낮춰 걷을 수 있도록 해보겠소.”
레오프릭은 고디바가 절대 못할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착하고 소신에 찬 고디바 부인, 예상을 깨고 나체로 말에 올라탄다. 십대 중반의 어린 나이였다. 귀족의 딸, 백작 부인이라는 신분, 신실한 신앙의 기독교인이란 걸 감안하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도 나름대로 성심껏 도리를 갖추고자 했다. 혹시라도 고디바 부인이 부끄러워할까 봐 그녀가 마을을 돌아다니는 사이 문을 걸어 닫고 장사도 접었다. 자신들을 도와주려는 그녀의 용기에 감동한 것.
하지만 이런 와중에 그녀의 몸을 몰래 훔쳐본 자가 있었다. 바로 양복재단사 톰.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고디바 부인의 벗은 몸을 본 벌로 톰은 장님이 되고 말았다. 피핑 톰(Peeping Tom, 엿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관음증 환자)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그리하여 결과는 어찌 됐을까? 다행히 레오프릭 백작은 세금을 낮췄다. 설마 하며 내건 요구를 실행에 옮긴 부인에게 감동했던 바였다. 이후 레오프릭은 고디바와 함께 신앙심을 키우며 코번트리를 자비롭게 다스렸다고 한다.
고디바의 미담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나체 시위와 희생정신을 상징하게 됐다. 고디바의 전설은 여기서 매듭져진다.
누군가는 과장되고 미화됐다고 군소리지만 실제 인물이었으며 당시 시민들 사이에 평판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긴 의미와 가르침을 찾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고디바는 희생하는 여인이라기보다 당당한 영웅이 아닌가 말이다. 세금을 덜 내고자 하는 민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망국적인 부동산가격 폭등에 따른 조세 대응을 놓고 말들이 많다. 이 과정에서 부자들의 엄살은 참 듣기 거북하다.
단순화시켜 말해보자. 11억 가진 사람(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세금 몇백만원 늘었다고 죽는 소리하면 누가 그걸 측은하다고 공감하겠는가. 다주택자가 아닌 1주택자는 부담이 오히려 줄기도 한다.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더 거둔다고 하는 게 잘못이라고 하면 조세를 아예 일률적으로 하라는 말인가.
부자에게서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가난한 사람이 버틸 수 있다는 논리는 조세 행정의 기본이다. 또 그것이 복지의 확대와도 직결된다.
고디바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가난한 사람 세금 감면을 염려하고 고민할지언정 부자의 세금 감면을 위해 걱정하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따라서 답은 간명해진다.
가난한 사람의 기본권적 안녕을 고민해야 복지가 이뤄지지 부자의 기름진 향락을 뒷받침한다고 복지가 탄탄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강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