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서평'
1.
저는 시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시를 좋아하기는 한답니다. 마침 <<슬쩍>>을 슬쩍 소매 자락 안에 밀어 넣었어요.
2.
시인이 생각하는 시(詩)란 무얼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다행히도 시인 오인태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시가 무엇인지를 저에게 친절하게 일러주는군요.
“싹 틔우지 못하는 씨앗을 얻다 써/ 단, 한사람 가슴에도 꽂히지 못하는 시를 뭣하러 써”(오인태, <씨앗, 또는 詩앗>, <<슬쩍>>, 서정시학, 2021)
미욱한 제가 세 가지 깨침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씨”가 “시(詩)”라는 군요. 시는 가슴속에 씨처럼 뿌려져 싹을 틔우는 것이랍니다. 또 하나의 깨침은 시인은 언어의 주술사가 틀림없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문자 그대로 포개지는 두 개의 문장으로 이렇게 깊은 뜻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습니다. 끝으로, 시인의 결의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가슴에 꽂히지 못하는 시”라면 결연코 거부한다는 선언이 새파란 칼날입니다.
3.
아마도 시인은 날마다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는 일상의 수도사요 무사입니다.
“맨날 주둥아리로 시를 나불대니/ 심장을 뚫는 시 한 편 못쏘지”(오인태, <시발시발>, <<슬쩍>>)
시는 화살이랍니다. 가슴은 어느덧 심장으로 바뀌었고, 꽂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뚫어버리는 강력한 화살이란 말이죠. 날마다 오순 십순 씩 화살대를 쏘아대던 남쪽 바다의 이순신 장군이 생각납니다. 시인은 그런 자기 수련의 멍에를 기꺼이 걸머지는 분인 줄, 이제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4.
그러므로 시란 결국에 무엇일까요. 오인태 시인은 시의 본질을 묻는 저에게 참으로 깊고 아름다운 공안(公案, 화두) 하나를 슬쩍 밀어줍니다.
“말씀으로 절을 지었으니/ 말을 절처럼 고요히 하렸다!”(오인태, <시詩에 대한 해석>, <<슬쩍>>)
시는 한구절 한구절이 다 절간(寺)이라는 것입니다. 그 한귀 또 한귀가 엄격한 묵언 수행의 결과으므로 당연한 귀결이지요. 그런 고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시를 나불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지요. 말을 하되, 시어를 고르되 “절처럼 고요히”하라는 당부입니다. 오인태 시인은 곧 고요한 절간의 스님이요, 그의 시는 묵언 수행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을 아끼고 또 아껴라!
5.
시인이란 심장을 꿰뚫는 명궁(名弓)이요, 그는 곧 선승(禪僧)임을 갈라진 문틈으로 <<슬쩍>> 엿보았습니다. <<슬쩍>>에는 가슴에 꽂히는 화살이 참으로 많습니다.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려 애쓰는 것은 절간의 고요를 깨는 일이 될까 봐 이만 그칩니다. 모두 청안(淸安)하시기를 빕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