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북펀딩에 많은 분들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반응을 보여주셨다. 좋은 일이지만 옮긴이/펴낸이의 입장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지금 원고가 내 수준이고, 능력을 넘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니 더 본다고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올리는 뜻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기로 했다. 후주까지 820쪽이다. 옮긴이의 말을 써야 한다.
눈에 쥐가 나도록 읽는 중에 김영사에서 메일이 왔다. "<치명적 동반자>는 현재 초교를 마친 상태이며, 5월 말 출간 일정으로 작업 진행 중입니다. 일정이 바쁘신 듯하여 조심스럽지만 질문 사항도 있고 하니 마지막으로 한 번 봐주시고, 역자 후기는 5월 14일까지...." 헐, 이거는 내가 하자고 조른 책이니 책임감을 갖고 읽어야지, 암만! 326쪽이다. 역시 옮긴이의 말을 써야 한다.
밤새 뭔가에 쫒기는 꿈을 꾸다 아침에 메일함을 여니 불길한 메일이 한 통 와 있다. "<바이러스> 1교지 보내드립니다."라니....그게 뭐지?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쯤에 어린이/청소년을 겨냥하여 바이러스에 관한 책을 한 권 써서 원고를 넘겼다. 별 소식이 없다가 왜 하필 지금? "...인쇄는 5월 17일로 잡았는데요, 바쁘시겠지만 10일까지 서문을 주실 수 있을까요? 일정을 여유롭게 잡는다고 했는데도 늘 마감이 임박해서야 몰아치게 되네요...." 이게 실화냐? 이렇게 촉박하게 주는 경우가 어디있단 말인가...툴툴거리며 원고를 펼쳤더니 명작이로다! 정녕 이 책을 내가 썼단 말인가? 그런데 뒤로 가니 조금 논리가 매끄럽지 않고 모호하게 기술된 부분도 눈에 띈다.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 해도 완벽을 기할 밖에. 요건 좀 짧아서 103쪽. 물론 지은이의 말을 써야 한다.
이렇게 세 권의 책이 같은 달에 나오면 좋게 보는 분들은 강모가 수퍼맨이라고 생각하겠고, 안 좋게 보는 분들은 날림으로 책을 써 젖힌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소쩍새가 울고, 천둥번개가 치는 동안 목과 어깨와 허리와 손의 통증을 참아 가며, 침침한 눈을 부벼 가며 만만찮은 산고를 거쳐 태어나는 놈들이다. 고난의 5월을 뚫고 살아남으면 정말 6월부터는 만고강산으로 놀 것임을 천지신명께 맹세한다.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