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좀 조심스러운 얘기다. 혼란스러워 하는 분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쁘게는 비과학적 사이비들이 이상한 논리로 이용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어차피 뭐든 그렇게 이용하니까 말을 하든 하지 않든 차이가 별로 없다.
선량한 사람들은 아래 설명을 읽고 차근차근 생각해본다면 지나치게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기보다 능히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백신을 맞았다고 포스팅했더니 "'전삼후타'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라는 답글이 달렸다.
"백신 맞기 전 삼겹살, 맞고 나서 타이레놀"이란 뜻이다. 아예 백신을 맞기 전에, 또는 몸살 기운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예방적으로 해열제를 복용했다는 분도 종종 본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 낸 <소아과에 가기 전에_신생아편>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예방접종 시 아기의 불편과 통증을 덜어주기 위해 열이 나지 않는데도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이나 다른 해열제를 주는 경우가 있다. 2009년 체코 공화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이 예방접종 후 반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
열이 나는 빈도를 효과적으로 감소시켰지만 동시에 아세트아미노펜은 백신에 대한 면역 반응을 뚜렷하게 감소시켰다.
예방접종의 목적은 면역계를 자극하여 항체를 생성함으로써 향후 질병에 맞서 싸우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세트아미노펜을 투여한 시험군에서는 몇몇 백신에 대한 항체 생산량이 유의하게 감소했다(모든 백신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백신을 접종 받은 아기의 절대 다수는 아세트아미노펜 투여와 관계없이 보호 수준의 항체를 생성했다.
항체 생산량이 이렇게 감소하는 현상이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부프로펜이나 다른 해열제가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는지도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체코 연구를 감안한다면 예방접종을 받고 나서 아기에게 가급적 아세트아미노펜을 주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아기가 보챈다면 시원한 것을 대주거나, 부드럽게 흔들어주거나, 고무 젖꼭지를 물리는 방법으로 달래볼 수 있다. 하지만 백신을 맞고 나서 달랠 수 없을 정도로 보챈다면 아세트아미노펜 사용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모든 아기들이 충분한 항체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할 생각이다.
1. 접종 전부터, 또는 접종 후 아무 증상이 없는 데도 "예방적으로" 해열제를 복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코비드와 그 백신에 대해 아는 바가 아직 많지 않다. 신체의 면역반응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2. 그렇다고 고생스러운데 억지로 참으면서 끙끙 앓을 필요는 없다. (다른 백신의 예를 보았을 때, 그리고 의학적 상식으로 판단할 때 해열제를 먹는다고 해서 충분한 면역이 형성되지 않을 가능성은 적다.)
3. 해열제를 먹어야 한다면 부루펜보다는 타이레놀을 먹을 것이다. (염증 반응에 덜 관여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분들께서 잘 알아들으셨으리라 믿는다.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기왕이면 그렇게 한다는 뜻이다. 다행히 나는 1차 접종 후 타이레놀을 복용할 필요가 없었다. 아내는 열이 나고 두통이 심해서 주저하지 않고 타이레놀을 먹었다.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