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내가 책을 즐기는 것은 아마도 천행(天幸)이 있어서이다. 하늘이 다행히도 내 눈을 내려주어 고희에도 자잘한 글씨를 볼 수 있고, 자잘한 글씨를 쓸 수 있다. 그러니 이것도 천행이라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하늘이 다행히도 나의 성性을 내려 주어 평생토록 속인(俗人)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년부터 노년까지 친척과 빈객이 왕래하는 번거로움 없이 한뜻으로 독서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하늘이 다행이도 나에게 정情을 내려 주어 평생토록 식구들을 가까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용호에서 노년을 마치며 다행히도 세파에 휩쓸리고 핍박받는 고통에서 벗어나 한뜻으로 독서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천행이라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하늘이 다행히도 나에게 심안(心眼)을 내려주었다. 책을 열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대강의 전말을 본다. 책을 읽고 세상을 논하는 것은 예부터 많이 있었으되, 혹은 껍데기 까지 보고 혹은 피부까지 보고, 혹은 혈맥까지 보고, 혹은 근골까지 본다. 그러나 뼈에 이르는 것이 절정이다. 설령 자기는 오장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해도, 사실은 아직 뼈도 찔러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 천행을 얻었다고 하는 한 가지이다.“
중국의 사상가 이탁오의 <독서의 즐거움>이다. 내가 다행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슬프게도 생각하는 것이 어린 시절에 오로지 책만 벗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 다른 취미를 가졌거나 아니면 좀 더 윤택한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나는 책벌레로만 살지 않았을 것이고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그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책을 벗하지 않고 살았더라면 나의 인생은 어떤 형태로 흘러갔을 것인가? 하고 이맇게 저렇게 유추해볼 때가 있다.
그랬다면 내 타고난 성격 상 나는 정말 한심한 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탁오는 이글을 지은 뒤에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였다.
“이 두 가지 천행이 있어서 늙어서도 배우기를 즐거워한다. 그래서 <독서의 즐거움을 지어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세상의 하고 많은 것 중 아무리 중독되어도 나쁘지 않는 것은 독서밖에 없다”고. 다행히 나는 너무 어려서부터 책에 중독되었고, 지금도 역시 그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시 산천 유람을 즐기는 것도 또 하나 나의 물리치지 못하는 큰 중독이다.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도 같다.’ 바꿔 말하면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도 같다.

그것이 나의 병이고 나의 더할 수 없는 행운이며, 나의 운명이다. 더 다행인 것은 평생을 답사하면서 경탄한 우리나라 산천에 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이 땅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리가 아파서 길을 나설 수 없을 그 때까지 떠돌고 떠돌자. 이 늦은 봄날에 소망이다. 그런데 언제쯤 마음놓고 떠돌 수 있을지...
/사진·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