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참사 속에 머문 시간, 2014 0416 0849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장면(자료사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장면(자료사진)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전남 진도군 앞바다인 조류가 거센 맹골수도에서 세월호가 급격하게 변침을 시작했다.

이 배에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포함해 교사14명, 인솔자 1명, 일반 탑승객 74명, 화물기사 33명, 승무원 29명 등 모두 476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을 태운 배는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표류하기 시작했다.

언론 '전원 구조' 오보, 구조당국 '우왕좌왕'...304명 '희생'

8시 51분.

단원고 학생이 119에 구조요청 신고를 했다. 그러데 이상한 일이 배 안에서 벌어졌다. 배는 침몰하고 있었지만 선내에서는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이 연속적으로 흘러나왔다.

9시 35분.

해경 함정 123정이 도착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기관부 선원 7명이 승객을 버리고 탈출해 자신들부터 구조되고 조타실 선원들도 뒤따라 탈출에 성공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배는 서서히 침몰했고, 다행히 침몰 전까지 172명이 구조됐지만 나머지는 구조되지 못했다.

11시 1분.

MBC 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 1분 '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 구조' 오보(화면 캡쳐)
MBC 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 1분 '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 구조' 오보(화면 캡쳐)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방송을 비롯한 주류 언론들이 ‘전원 구조’라는 오보 경쟁을 했다. 그러나 침몰한 이후 단 1명도 구조되지 못한 채 304명(희생자 295명, 실종자 9명)이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 언론과 정부, 구조당국은 전 세계 언론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기레기’라는 오명이 참사 이후 언론인들에게 낙인 찍혔다.

YTN 2014년 4월 16일 '학생 전원 구조' 오보(화면캡쳐)
YTN 2014년 4월 16일 '학생 전원 구조' 오보(화면캡쳐)

2017년 3월 25일.

드디어 세월호가 건져 올려졌다. 참사 후 3년 여 세월이 흐른 후 드러낸 세월호 모습은 처참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 때도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그토록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청와대와 해경은 뭘 하고 있었는지 등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3년 여만에 인양된 세월호 모습(자료사진)
3년 여만에 인양된 세월호 모습(자료사진)

참사 의혹 해소하지 못한 채 흐른 7년 세월 

2021년 4월 16일.

7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300명이 넘는 학생과 시민을 구조하지 못했는지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이제라도 밝히자'는 희미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검찰이 밝힌 사고 원인들 중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검찰이 밝힌 원인으로는 △2012년 일본에서 수입된 후 수리 및 증축에 따른 총톤수 증가(239톤)와 좌우 불균형 △사고 당일 최대 화물 적재량(1,077톤)의 2배에 달하는 과적(2,142톤) △선체 복원에 필요한 평형수 등을 1,308톤 감축 적재 △관계 법령에 따르지 않은 방법으로 차량과 컨테이너를 부실하게 고박함으로 인해 복원성이 심각하게 악화됨 △협수로를 통과할 때 조타할 의무가 있는 선장이 선실을 이탈하고 3등 항해사와 조타수가 과도하게 변침하는 등 선원들의 중대한 과실이 더해짐 등이 침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월호가 왜 급변침을 하게 됐는지, 구조당국은 세월호 침몰 후 왜 단 1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등에 대한 진상 규명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사고후 국회는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를 꾸렸고, 감사원과 검찰이 잇따라 관련 감사와 수사 결과를 내놨지만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켰다. 

사고 다음해인 2015년 세월호 참사 1기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됐지만 당시 정부와 여당의 비협조로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던 점은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아프지만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는 팽목항.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는 팽목항.

'박근혜 탄핵'과 맞물려 2017년 3월부터 선체 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1,000일 넘게 바닷 속에 있던 세월호를 인양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인 2018년에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해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왔지만,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9년 11월에 출범한 검찰의 세월호 특별수사단은 관련 의혹 17건 가운데 해경 지휘부의 구조 소홀과 청와대 비서실 등의 세월호 특조위 방해, 이 두 가지 혐의만 재판에 넘겼다.

이마저 대부분 무혐의로 결론 난데 이어 검찰이 업무상 과실치사 상 혐의로 기소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지휘부 10명에게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의 시위 천막이 아직도 전국 곳곳에 뿌연 먼지만 가득 쌓인 채 남아 있다.

의혹이 해소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하늘에서 맞게 될 25살, 26살의 꽃다운 희생자들의 봄은 따뜻하길’ 바라는 추모의 글이 다시 노란 물결을 이루며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아프지만 세월호를 잊지 말고 모두 함께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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