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선거가 끝났다. 오랜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선거가 끝나고, 남을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가야 한다.

선거에 진 사람은 퇴장하고 이긴 사람은 남아서 산적한 일을 해야 할 것인데, 물러나는 것, 남는 것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선공 손석(孫奭)이 태자소보를 끝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운(鄆) 땅에 거처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어시청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어시청은 인종이 상으로 내린 시를 어시청의 벽에 새겨 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공이 손님들에게 “백거이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많은 고관들이 옛집 문 굳게 닫혔는데, 집 주인은 늙도록 돌아오지를 않는구나.' 이제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라고 했다.

다시 석개(石介)를 돌아보며 <주역> 이괘(離卦) 구삼(九三)의 효사(爻辭)를 외면서 ”근심 잊고 즐거워 하니 소인(小人)의 뜻에 만족하고, 노래하며 북치니 대질(大耋)이 탄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고 했다.

공은 순후한 덕과 학문으로 궁궐에서 20년 동안 어전에서 강의하다가 늦은 나이에 과감하게 벼슬길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노닐며 지냈다. 덕을 끝까지 온전히 지킨 사람으로 공에 견줄만한 사람이 근세에는 적다. <명신언행록>에 실린 글이다. 

각자가 맡은 일을 하다가 소임을 끝내고 물러나면 다시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오로지 그 일에만 집착하다가 다른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정치가 그렇다.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도의원이나 시의원을 하게 되면 다른 직업을 꿈도 안 꾸고 오로지 그 일에만 매진하다가 폐인이 되는 수가 많다.

말 그대로 아편이 따로 없다. 그렇게 중독되게 만드는 것 중에 정치가 제일이다. 선거에 패한 사람도 이번 선거에 당선된 사람도 다음에 나오는 노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무리해서 계속 유지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두들겨 날카롭게 만든 칼은 오래 가지 못한다. 금은보화를 집안이 가득하도록 쌓아 둔다고 해서 그것을 지니고 나갈 수는 없다. 출세를 해서 잘난 체 하는 것은 화를 입은 장본이다. 일을 다 해서 치웠으면 얼른 물러나는 것이 천지 자연의 이치다.“ <노자> 제 9장에 실린 글이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여기는 벼슬도 잠시 내가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가야 하는 장난감에 불과 한 것이다. 집착하지 말고, 과시하지 말고, 초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 자리에 올라서면 우쭐대다가 큰 나락에 빠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공직에 오르는 것을 겸손하게 살면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 나의 즐거움은 나중에 누린다."

송나라 문장가인 범중엄의 악양루기의 한 소절처럼 며칠 전 저 화사하던 꽃들도 어느새 지고 말았는데. 

/사진·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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