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생태탕과 페라가모에 사로잡혀 있는 국내 언론에서 잠깐 눈을 돌려 미얀마 사태를 보도하는 뉴욕타임스를 보면 잠이 안 온다. 자연스럽게 80년 광주가 겹치기 때문이다.
강력한 힘을 갖춘 불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시민들이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얼마나 위태롭게, 얼마나 용감하게, 얼마나 슬프게 싸우는지 그 현장에 있는 것만 같다.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이 목숨을 걸고 정의를 지키려는 민중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꼴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미얀마는 밖에 알려지기라도 한다. 80년 광주는 20년 넘게 진위조차 의심받았다.
술에 취한 공수부대가 무고한 시민들을 몽둥이와 개머리판으로 때려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장갑차와 헬기를 동원한 '작전'을 펼쳐 자동소총과 기관총으로 쏴 죽였다고 하면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과 SNS의 시대다. 전 세계에서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얀마의 민중을 응원하고 마음이라도 보탠다.
미얀마는 어찌 될까? 군부가 물러설 곳이 없다는 식으로 발광을 하고 있으니, 엄청난 강대국이 외교와 무력을 동원하여 개입하지 않는 한 당장은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저 정도 강단있는 국민이라면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날을 맞을 것이다.
그 날은 언제일까? 20년? 30년? 그런데 40년쯤 후에 민주화되고 잘 살게 된 미얀마에서 군부독재의 후예들을 양곤이나 만달레이 시장으로 뽑는 일이 벌어질까 나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근본을 숨기려고 당명을 하도 자주 바꿔 정신이 없지만 국민의 짐인지 국민의 적인지 하는 도당이 80년 광주에서 피칠갑을 하고 태어난 정치군인들의 후예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군부독재가 이어지는 동안 거기 빌붙어 모든 이권을 독점한 자들이 돈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카르텔을 형성하고 혹세무민하는 것이 그들의 본질이다. 40년이 지났다고? 40년이 40번 지나도 지지해서는 안 될 무리가 바로 그들이다.
나는 서울에 집 갖기를 희망해본 적이 없고, 아이들의 팔을 비틀어서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의 절망과 박탈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국가의 전부인가? 노통은 무능하다는 소릴 많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신문에서 무식하다, 무능하다, 무지막지하다고 까댔다. 내 평생 가장 후회하는 일이 간사한 언론에게 속아 그를 무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나 놓고 보니 그가 이루어놓은 것이 어마어마함을 알게 되었고, 하나하나 깨달을 때마다 지금도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산다. 지금 정부는 더 뛰어나다. 그야말로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정치, 경제, 사회정의, 민주주의 발전 상황을 보여주는 눈부신 통계가 입증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박근혜가 탄핵으로 물러났을 때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국가의 물적토대와 검찰권력과 언론을 손에 넣고 있는 세력이 그토록 강고한데, 그걸 어떻게 4-5년 만에 다 뜯어 고치나? 방법은 있다. 독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역사를 후퇴시킬 뿐이다. 민주적인 원칙을 지켜 가며 고치려니 힘들고, 답답하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걸 국민이 이해하고 도와줘야 한다.
젊은이들에 대해 말이 많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 친구들 우리 때보다 훨씬 똑똑하고 실력있다. 꼰대로서 한 마디만 훈수를 둔다면 51:49 법칙을 따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선거에서 절대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어떤 도덕기준에 따라 비난하기 시작하면 흠결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사고방식은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는다. 어떤 정치세력과도 사랑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상황과 사정을 잘 봐서 앞으로 어떤 쪽이 나와 사회와 나라의 발목을 덜 잡을 것인지 따지는 편이 낫다. 그걸 따질 때 100:0을 찾지 말고, 51:49를 보라는 것이다.
조국이 권력을 동원하여 부당하게 자식의 입시에 도움을 줬다고 믿는가? 그랬나 안 그랬냐를 따지려면 1년 내내 그 얘기만 해도 부족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보다 여당이 몇 점, 야당이 몇 점인지 따지면 쉽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카지노를 이기는 방법은 1%라도 확률이 큰 쪽에 배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장기적으로 엄청난 돈을 딴다. 물론 젊은이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 내일이 서울/부산시장 본 투표일이다. 미얀마를 기억하는 분이 많길 바란다.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