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캔디스 밀라드(Candice Millard)는 처칠, 루스벨트(시어도어), 그리고 미국 대통령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제임스 가필드에 대한 책 <Destiny of the Republic>으로 매번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가다. 제임스 가필드는 미국의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 두 달도 안 되어 암살 기도에 의한 총상을 당해 두 달 넘게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재임 기간이 4개월에 불과해 미국 대통령 중 두 번째로 짧다.

적빈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업을 포기하고 운하 관리인으로 일하던 어린 시절, 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교수가 되고, 총장이 된 후 정치인으로 변신하기까지 입지전적인 삶, 노예해방의 대의에 헌신해 북군 장교로 복무하고 의도치 않게 대통령이 되기까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당시 정치판의 권모술수나 흑인 지식인을 중용한 일, 부통령으로 유약하고 무능한 인물이었던 체스터 아서가 그의 유고로 대통령에 올라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 일, 암살범 가토의 병적인 심리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지루할 틈이 없다.

아무래도 의학적인 사실에 가장 흥미를 느꼈는데 당시 파스퇴르의 세균설과 리스터의 무균수술법을 거부하며 오만을 떨던 미국 의료계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두 달이나 앓으면서 서서히 스러져가는 환자를 보는 안타까움, 항생제 없던 시절의 총상 치료나 예후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에서 맺은 인연으로 대통령의 몸속에 박힌 총알을 찾으려는 알렉산더 벨의 노력 등 감탄을 자아내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한다.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와 세균설, 무균수술법 등에서 자연스럽게 린지 피츠해리스(Lindsey Fitzharris)의 걸작 <The Butchering Art>를 떠올렸다. 열린책들에서 <수술의 탄생>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 번역서로 나오면 챙겨 읽는 편인데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번역이 생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음이 모두 올라가긴 하는데 정작 감동이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노래 같달까. 프로이트 전집 이후로 열린책들 편집부를 불신하는데, 이 책은 특히 심하다. 역자가 유명한 분이라 기대를 했지만, 솔직히 정말 그 분이 번역한 것인지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영어책 읽기가 많이 어렵지 않은 분이라면 원서를 권한다.

파킨슨 병의 대가인 마이클 오쿤(Michael Okun)의 <Living With Parkinson's Disease>는 아주 좋다. 그의 책 중 제일 좋은 것 같다. 파킨슨 병은 점점 환자가 늘고 있어 좋은 지침서가 필요한데, 아직까지 출판사에서 건드리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 환자가 100만에 이르는 주요정신병 지침서도 2~3천권 매출이 힘든 판이니, 유병률이 1만명당 2-3명에 불과한 파킨슨 지침서가 순익분기점에 도달하기는 무망한 일이다.

이런 책을 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복지부나 질본에서 지원해서 내는 것이지만, 그런 생각들이 별로 없으므로 '지식 직거래' 방식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Johns & Bartlett에서 나온 100 Q&A 시리즈의 <HIV and AIDS>도 마찬가지다. 이미 5판이 나왔을 정도로 정평있는 책인데, 내용이 일반인이나 의료인 모두에게 도움이 될 정도로 충실한 데다, 아주 알기 쉽게 씌어졌다.

개인적으로 에이즈의 역사는 좀 알아도, 직접 환자를 본 적은 없는데 이 책을 통해 정말 많이 배웠다. 이런 책을 보건당국에서 지원해서 낸다면 환자와 의료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왜 이쪽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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