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만난 풍경

‘코로나19와 혼돈의 정신세계, 어떻게 할 것인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하는 우리 시대에 주어진 새로운 화두다. 곧 사라질 줄 알았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이제 우리 삶과 영원히 공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일상생활에서부터 학교, 직장, 가정에서의 모든 삶의 기준과 원칙이 뒤바뀌면서 지구인 모두가 정신적인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긍정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식’이야말로 가장 강한 무기라는 사실이었다.
특히 개인에게 상처와 결합된 고통을 견뎌내기란 극도로 어려워져서 엄청난 고독으로 자기를 내동댕이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실존이 소멸의 위기에 이르게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위기 속에서도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행복한 삶에 대한 구상을 가져볼 수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우리가 다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지켜야할 것과 버려야할 것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상식이 결코 앎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코로나 이후에 전개될 ‘불평등 팬데믹’ 현상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나 홀로 생존을 이어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는 공존능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보다 좀 더 안정적인 정신적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지혜로서 ‘마음의 비축’이 필요하다. 가족을 포함한 타자들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에 대한 이해, 즉 사회적 관계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궁핍함 속에서도 자신의 생존이 얼마나 타자에 종속되어 있는지, 또한 자신이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념의 벽을 넘어 연대 필요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처럼 보였던 21세기 인류문명이 한순간 멈출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삶을 근본적이고 총체적으로 되돌아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삶의 방식과 목적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 되묻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은 세계 열강이 주도하는 경제 시스템과 사회 안전망의 취약성을 보여주면서 대안을 생각해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경과 인종, 이념의 벽을 넘어선 세계 시민들의 연대의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환경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코로나19로 자본주의 고속열차가 잠시 속도를 줄인 사이에 미세먼지가 30% 이상 줄었고, 문명 확장의 폭력성에 쫓겨났던 동물들이 도심까지 찾아오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
이 새로운 광경 앞에서 우리는 인간 중심적 삶이 아니라 자연 환경과 생태계 전체를 생각하는 삶이 가져올 궁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게 됐다.

이제부터라도 환경에 관해 함께 고민하며 깊이 성찰해야
대재앙에 굴복하거나 감상주의에 빠져서도 안 되지만, 분열하며 각자도생만 추구할 경우, 비극의 역사가 인류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를 놓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련 속에서 쌓아온 인륜적 존엄성과 품격마저 상실할 것이다.
미국의 사회철학자 노직(Robert Nozick)은 "성찰하지 않은 삶은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의 가장 큰 이슈는 정치와 경제다. 잘 살고, 잘 먹는 문제에 집중하면서도 환경문제에서 만큼은 소홀하다.

이제부터라도 인류의 삶을 공동으로 고민하게 된 첫 계기이니만큼 환경에 관해 함께 고민하며 깊이 성찰해야 한다. 환경을 위한 담론의 장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만들어야 한다.
전염병의 종식은 의학의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철학의 단계에서 끝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비로소 깨달았다.

식생활이나 교제 방식 등 소소한 생활 방식도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는 친밀감을 가까이 생활하는 것, 육체적인 거리를 많이 생각했다면 앞으로는 서로가 위로 되는 방향에서 정신적인 교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데 있다. 어떤 일이든 수용하면 감당할 힘이 있다. 부정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편함과 불안을 감수하는 것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시로 변형을 거듭하고 증식하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바이러스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기껏해야 시간의 구체화일 뿐...

30년이 넘게 대학 강단을 지키며 현실 사회를 비판하며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했던 강준만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고 상아탑을 떠나면서 “칼 마르크스는 ‘시간이 전부이고 인간은 더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기껏해야 시간의 구체화일 뿐이다’고 했다는데, 이게 뭔 말인지는 몰라도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게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로서 의미를 묻는 존재이다. 생활 방식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이 시대에 적합한 삶의 의미, 자기 존재에 대한 의미를 묻는 작업을 이어서 수행하지 않고는 코로나19가 물러난 뒤 우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칸트는 행복을 이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도덕적 의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은 도덕적 행위를 했을 때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해 한다"고 칸트는 역설했다. 도덕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 소명을 갖는 것이 행복이란 것으로 해석된다.
기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난국을 풀어갈 실마리 역시 도덕과 상식 안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도덕과 상식을 실천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알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하지 않을 때가 많다. 위기일수록 도덕과 상식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되새겨 본다.

※사진은 3월 27일 토요일 오전 백목련과 홍목련이 어우러져 매년 이맘때면 어김 없이 시선을 즐겁게 해주는 전주시 송천동 오송제 주변의 풍광을 담은 것이며, 위 글은 계간지 <사람과언론> 제12호 '권두언' 중 일부임.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