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화엄경 이야기(3)

화엄경의 많은 내용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선재(善財)라는 소년이 차례로 52명을 선지식을 찾아가서 법을 구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 입법계품이 아닌가 싶다.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만난 52명의 선지식 중에는 보살만 아니고, 비구 ·비구니 ·소년 ·소녀 ·의사 ·뱃사공 ·신 ·선인 ·외도 ·바라문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평소 왜 하필 '52인'인가라는 사실이 궁금했다. 42년째 금융기관에 근무하며 그동안 회계사 공부도 하고 평생을 숫자 놀음만 하던 사람이라 숫자에 민감해서 52라는 숫자가 궁금했는지 모르겠다.
어느 유명한 철학자 분은 주역은 인생의 문제를 64개로 봐서 64괘가 되었고, 화엄경에서는 인생의 문제를 52개(또는 53개)로 봐서 그렇다고 해서 그런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중국의 지욱선사께서 불교의 입장에서 주역을 해석한 주역선해라는 책을 읽으면서 불가에는 보살이 되기 위한 수행과정이 52단계라는 사실을 알고, 옛날에 읽었던 화엄경 입법계품을 들춰보니 선재동자가 만난 52인의 선지식 한분 한분이 선재동자에게 보살이 되기 위한 52개의 수행단계를 가르쳐주는 선지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을 쓰신 분이 52명의 선지식을 책 속에 등장시킨 것이다. 참고로 보살이 수행해 가는 단계는 먼저 모든 종교가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듯이 열 가지 믿음으로 채워진 십신(十信)에서 출발하여,
둘째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으로 정진했기 때문에 다음에는 진리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십주(十住)의 단계가 나온다. 셋째는 진리에 안주하지 말라며 중생들을 위한 보살행으로서 적극적인 행동인 십행(十行)을 강조하는 과정이 나온다.
넷째는 지금까지 쌓은 수행의 공덕을 대중들에게 모두 돌려주라는 10회향(廻向)의 단계가 나온다. 다섯째는 마치 대지가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모든 중생들을 품에 안고 이로움을 주라는 10지(地)라는 단계인데 여기까지가 50단계이다.
그리고 51번째는 붓다의 깨침과 동등한 ‘등각(等覺)’의 자리이고, 맨 꼭대기인 52단계는 가장 빛나는 ‘묘각(妙覺)’이라는 단계이다. 묘각이 15일에 뜨는 완벽한 모양의 보름달이라면, 등각은 보름 전날 뜬 달에 비유하곤 한다.
이래서 불교가 참으로 어렵다고 하는 거 같다. 그래서 스님들도 두꺼운 화엄경이 싫어 밥먹고 앉아 참선(參禪)을 하는 모양이다. 옛날에 소년.소녀들의 가슴에 커다란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 추억의 '은하철도 999'라는 명작만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메텔과 철이가 은하열차를 타고 행성을 여행하는 이야기는 화엄경의 입법계품 선재동자 이야기를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메탈이 문수보살이고, 철이가 선재동자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주인공이 별에서 우주 여행을 온 어린 왕자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선재동자인 것이다.
어린 왕자는 인간이 고독을 극복하는 과정을 어린이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셍텍쥐페리는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세계적인 위대한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를 잃고 어린왕자에 대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단지 어린 왕자는 친구를 찾아 떠났고, 선재동자는 스승을 찾아 떠났던 것이다. 셍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마음을 깨닫는 것’ 즉 '심안(心眼)을 뜨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품 전반에 불교적인 예지가 번득이는 것은 그가 비록 불교 수행자의 체험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를 읽으면서 간접 체험을 했기 때문에 두 작품의 기류가 근본적으로 비슷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에 '제 5공화국'이란 정치드라마에서 탤런트 이덕화 선생이 어느 인사의 역할을 맡으면서 유행시킨 '좋아! 아주~좋아!'하는 표현도 화엄경의 끝 부분에 부처님께서 구법여행을 마친 선재동자를 칭찬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선재(善哉)! 선재(善哉)!"
"좋아! 아주 좋아!"
쉬운 우리 말로는 '참 잘했어요'이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화엄이 아닌 세계가 없다.
/사진·글=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