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2001년 봄, 천 삼백리 한강을 열엿새 동안 걸어갈 때의 일이다. 태백시 창죽동 검용소에서부터 시작하여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까지의 여정을 걸어가던 중, 동강에 이르렀다.
귤암리에서 가수리 거쳐 운치리로 걸어가는 아름다운 동강 길에 이상한 풍경이 자주 나타났다. 사과나무와 배나무, 두충나무가 마치 고추 모종처럼 촘촘히 심어져 있었다.
“저렇게 심으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사과나 배나무는 고추 모종처럼 심어야 과일이 실하게 열리는 것일까?”
하여간 동강에서는 사람 만나는 것이 삼년 가뭄에 콩 하나 나는 것 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 계속 의문으로 남긴 채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발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가정리 정광섭씨 댁에 여정을 풀고 주인에게 물었다.
“광화교에서부터 동강을 따라 오는 길에 사과나무와 배나무가 고추 모종처럼 많이 심어져 있었는데, 무슨 연유지요?”
내 물음에 주인이 입을 열었다.
"행여 동강댐이 막아지면 보상이라도 받을라고 남아 있다가 요 모양 요꼴이 됐어요. 다섯 집이 살다 다 떠나고 우리만 남았어요. 동강댐을 막는다니까 전라도 진안 용담 사람들이 올라와 가지고 보상받으면 반반씩 나누자며 배나무, 사과나무, 두충나무, 창출 등 수도 없이 심었어요.
심기 전에는 관광버스를 두 대 빌려서 용담댐 현지답사도 갔었어요. 나도 갔구만요. 저기에다 무엇(카네이션, 국화, 과실수)을 심어 얼마를 받았고 저것은 얼마를 받았다고 하는데, 안 심을 사람 얼마나 되겠어요. 그 사람들 여기 와서 고생 무지했어요. 그러다 동강댐 계획이 취소되니까 요즘에는 얼씬도 않고 있어요. 그렇다고 여그 사람들은 달리 방법도 없고 그래서 이렇게 있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전라북도 진안이 고향인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답답하고 또 답답할 따름이다. 물론 진안 용담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전국의 투기꾼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진안 용담 사람들이라는 그 진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밀양댐으로 횡성댐으로 그리고는 몇 년 전에 발표되었던 익산시 경주마 목장 현장(익산에 경주마 목장이 들어선다고 저녁 9시 뉴스에 나가고 난 뒤 그 다음 날에 보니까 저녁 내내 잠도 안 자고 심은 배나무 사과나무가 들판을 가득 메웠지만 취소되고 말아 헛물만 켰다.)으로 옮겨다니며 애꿎은 배나무, 사과나무들을 얼마나 많이 심었던가.
공동의 선이나 대동정신은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로지 내 새끼, 우리 단체, 자기 자신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을 어찌하겠는가. 나는 원칙이 없는 우리나라의 법과 일부 사람들의 그릇된 가치관을 원망하며 맹자의 말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물에는 원래 동쪽으로 흐르는 물, 서쪽으로 흐르는 물이라는 구분이 없다. 그러나 위로 흐르는 것,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는 구분도 없는가? 인간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 않는 물이 없다.
지금 만일 물을 손바닥으로 쳐서 튀어오르게 한다면 사람의 이마 위로 넘어가게도 할 수 있고 또 물길을 막아서 역류시킨다면 산 위로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그것은 단지 외부적인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일 뿐이다. 사람도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악한 짓을 할 수 있지만, 그 본성은 역시 물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신정일의 <한강 역사문화탐사>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때는 투기꾼들과 현지인들이 그렇게 설쳤는데, 지금은 그렇게 학습한 교육을 공직자들이나 국토부, 또는 한국 토지공사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비밀을 알고서 써먹고 있으니, 전통은 유구하고, 역사 또한 유구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서울의 위성도시 도심을 아름다운 나무숲으로 울창하게 만들기 위해서 향나무나 버드나무들을 심고자 노력했는데, 그 진실을 우리가 너무 몰라주는 것은 아닌가?
서울 근교에 땅 하나 없어도 잘살고 있던 지방 사람들이나 그럭저럭 사는 서울과 근교 사람들이 집단 멘붕에 빠지는 이런 정책을 어서 거두고, 눈 가리고 아웅 하거나 쇼만 하지 말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펼쳤으면 싶다.
“내 가족과 나만 무사하다면 세상이 홍수가 나도 좋다. 불타버려도 좋다.” 그런 사람들이, 그런 집단들이 너무 많은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는 아닐 것이다.
"돈에는 더 많은 돈 이외에는 친구가 없다“
러시아 속담이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의미 있느 것들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 ‘돈과 권력’만 친구로 삼다가 죽을 것인가?
/사진·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