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면소 판결, '고무줄 판결'·'셀프 면죄부' 논란

‘형사 사건에서 실체적 소송 조건의 일부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선고하는 판결.’ 

'면소 판결(免訴 判決)'에 대한 사전적 의미다. 면소 판결은 해당 사건에 대한 공소가 부적당한 경우에 사건의 실체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 없이 소송 절차를 종결시키는 종국 재판의 하나다. 형사소송법 326조에 따르면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됐을 때는 면소 판결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전주MBC 2월 19일 보도(화면 캡쳐)
전주MBC 2월 19일 보도(화면 캡쳐)

그런데 이러한 면소 판결이 ‘고무줄 판결’ 또는 ‘셀프 면죄부’라는 따가운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기소된 정치인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다르거나 구법과 신법 적용의 차이가 발생해 공평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구나 본인들이 구법 기준에 의하면 엄연한 불법선거를 해놓고도 국회에 입성해 법을 개정해 면죄부를 자신들에게 부여하도록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법집행 방해 또는 월권이란 비판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도대체 면소 판결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본다.

구법·신법 임의대로 해석...“고무줄 판결” 비판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던 ‘전화나 말로 지지를 호소한 행위’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에 대해 어떤 이는 면소 판결을, 어떤 이는 유죄 판결을 받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 이전에 경로당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국회의원(김제·부안)은 1심에서 면소를 선고 받았다. 또 연하장과 인사문을 배포하고 교회 내에서 명함을 돌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은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정읍·고창)도 항소심에서 감형 받았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던 교회 내 명함 배포가 공선법의 개정으로 인해 면소 판결을 받은 것이 감형의 주된 이유다. 

반면 지역 당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경선 지지를 호소했던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국회의원(대전 중구)의 후보 시절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선거 과정에서 지지를 호소했던 이들에게 왜 다른 판결이 내려졌을까? 

총선 이후 국회 입성한 의원들 서둘러 선거법 개정, 왜?  

판결의 엇갈림은 ‘범죄 후 법률의 변경’에 대한 재판부의 태도 차이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9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선거법 개정 이전에 이뤄진 사전 선거운동 행위에 대해서도 개정된 신법을 적용할 경우 면소 판결에 적용되지만, 구법을 적용할 경우 그대로 범죄 행위에 해당된다. 

서울신문 1월 20일 기사(홈페이지 캡쳐)
서울신문 1월 20일 기사(홈페이지 캡쳐)

이러한 모순을 사법부는 임의대로 해석해 판결함으로써 고무줄 판결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4월 총선이 치러진 뒤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들은 공직선거법을 서둘러 개정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선거운동 기간 이전에도 전화나 말을 통한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식으로 개정한 것이다. 당연히 국회의원들의 입법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바람에 어떤 재판부는 총선 당시 적용되던 공직선거법 규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보고, 어떤 재판부는 새로운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범죄 후’ 바뀐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해석하고 있다. 

대전지법, "‘가벌성이 소멸되지 않는다’ 판단, 유죄", 그러나 전북은... 

엇갈린 사례로 대전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용찬)는 지난 1월 28일 황운하 의원의 선거대책본부에서 일했던 강모 씨와 정모 씨에 대해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1월 대전 중구의 총선 후보를 뽑기 위한 당내 경선 과정에서 예비후보이던 황 의원 지지를 부탁하는 전화를 권리당원들에게 걸어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이들은 변론종결 이후인 지난해 말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전화를 이용하거나 말로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 선거운동 기간에 제한을 받지 않도록 개정됐다”며 “‘반성적 고려’에 따라 면소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의 ‘반성적 고려’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법 개정이 ‘전화를 이용하거나 말로 선거운동을 하는 방법’의 처벌 자체가 부당하다는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난해 12월 29일 법 개정 이전에 법을 어긴 이들에 대한 가벌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또 “선거에서 공정한 경쟁을 위해 규범을 준수한 자들이 피해를 보는 불공정한 결과가 초래된다”고도 해석했다. 

입법자 ‘의지’ 담긴 개정 법률안, 적용 시점은? 

그러나 대전지법 형사11부의 판단은 전북지역에서 발생한 비슷한 사건에 대해 내놓은 법원 판단과는 달랐다. 전지법에 앞서 1월 20일 전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강동원)는 경로당에서 말로 지지를 호소해 기소된 이원택 의원에 대해 개정 법률을 적용시켜 면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개정 전 행위에 대해 개정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할 여지가 있긴 하다”면서도 국회의원들이 입법할 때 법 개정 이전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결단이 있었다고 해석했다. 

별도 경과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던 점에도 입법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판결이었다. 결국 '반성적 고려'에 대한 해석에서 두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해 항소한 상태다. 법조계 일각에선 “대전지법에서는 ‘가벌성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검찰의 판단이 받아들여져 유죄가 선고됐기 때문에 전주지법 사건에서도 항소심에서는 검찰의 주장이 인용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전주지법·광주고법, “개정된 공직선거법 우선...이원택·윤준병 의원 면소”

전북지역에선 이원택 의원에 이어 연하장과 인사문을 배포하고 교회 내에서 명함을 돌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은 윤준병 의원이 항소심에서 감형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던 교회 내 명함 배포가 공직선거법의 개정으로 인해 면소 판결을 받은 것이 감형의 주된 이유였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성주)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 의원에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윤 의원은 총선 출마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약 1개월 동안 권리당원과 지역 인사들에게 연하장과 인사장 5,000여 장을 보낸 혐의를 받는 등 정읍의 한 교회 출입문 입구에서 명함을 배포한 혐의도 받아왔다.

구 공직선거법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인사장, 연하장 등을 배포 또는 살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는 “연하장과 인사문 발송 부수가 상당히 많고 교회 명함 배부가 출입이 잦은 일요일에 이뤄진 점 등을 비춰 죄질이 좋지 않다”며 벌금 90만원을 선고했었다.

이에 검찰과 윤 의원은 사실오인과 법리오해, 양형부당 등의 이유로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교회 내 명함을 돌린 혐의가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면소 판결했다.

ㅇ녀합뉴스 2월 2일 기사(홈페이지 캡쳐)
ㅇ녀합뉴스 2월 2일 기사(홈페이지 캡쳐)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29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됐으며, 이번 개정은 구법이 부당하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이 사건 공소사실 중 교회 내 명함배포는 법률 변경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북지역에선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국회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원택·윤준병 의원 외에도 무소속 이상직 의원(전주을)과 이용호 의원(남원·임실·순창) 등 4명이 해당된다. 특히 선고 공판이 3월 19일로 연기된 이상직 의원에 대한 판결에서도 면소 판결이 적용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대전지역과 전북지역 사례가 대조적이어서 형평성 논란은 물론 앞으로도 선거법 위반 혐의에 관한 법의 잣대가 애매한 기준이 되고 말았다.

“이원택 의원 선거법 개정 표결 참석...족쇄 스스로 풀어?” 

전주MBC 2월 19일 보도(화면 캡쳐)
전주MBC 2월 19일 보도(화면 캡쳐)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들 외에 또 다른 문제까지 제기됐다. 바로 면소 판결이 셀프 면죄부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주MBC는 2월 19일 ‘'선거법 무죄' 이원택 의원...'셀프 면죄부'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 문제를 짚었다.

기사는 “지역에서 선거법 위반 의원들 대부분 지난 연말 선거법이 바뀌면서 혜택을 톡톡히 봤다”면서 “그런데 확인 결과, 이원택 의원이 법률안 표결에 참여해 결과적으로 '셀프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적잖은 비판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21대 총선을 넉 달 앞둔 미묘한 시기에 '예쁘게 봐 달라'는 말이 사전 선거 논란을 낳았고, 당선 이후에도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리게 됐다”며 “지난달 이원택 의원이 받아든 1심 선고 결과는 이름도 생소한 '면소'로 결과적으로 무죄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이 시작된 뒤에야 공직선거법이 완화됐지만 재판부가 바뀐 '룰'을 소급해 적용하면서 죄를 묻지 않기로 한 것”이라는 기사는 “그런데 이 의원의 발목을 잡을 뻔한 선거법 족쇄는 누가 풀었을까?”라고 반문한 뒤 "민주당 동료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압도적인 찬성표들 사이로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며 ”당시에도 선거법 때문에 재판을 받던 이원택 의원“이라고 꼬집었다.

전주MBC 2월 19일 보도(화면 캡쳐)
전주MBC 2월 19일 보도(화면 캡쳐)

기사는 “지난해 12월 박병석 국회의장은 ‘재석 265인 중 찬성 174인, 반대 72인, 기권 19인로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법률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고 선포하면서 단순히 바뀐 선거법의 혜택을 본 수준을 넘어, 이른바 '셀프 면죄부'에 힘을 실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도내 다른 국회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아 대조를 보였다”고 기사는 밝혔다.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민 뜻에 따라 바뀐 법에 표결의무를 다했지, 재판을 의식한 게 절대 아니다"는 본인의 해명과는 달리 '본인이 해당 입법 활동으로 면죄 혜택을 보았다'면 일반 국민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납득할까? 

검찰이 면소 판결에 불복하면서 항소심을 앞두고 있다. 과연 신법과 구법 가운데 어떤 선거법 적용이 타당한지, 면소 판결 논란은 당분간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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