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의 '세평'

버마 민주주의 시민·학생들의 군사반란 저항을 지지한다(Supporting the democratic citizens and students of Burma who resist military rebellion). 

버마(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48시간이 지났다. 지금 버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외신들이 버마 상황을 타전하고 있다.

2011년 까지는 정치 군인들이 정치 전면에 나섰던 버마는 버마 학생들과 민주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과 민주화 운동으로 명목상으로는 민간 정부를 내세웠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아웅산 수치'가 국가 고문으로 외교부 장관으로 군부와 "협치"를 진행했다.

작년 2020년 11월 아웅산 수치가 중심인 정당이 총선에서 이기자, 군부는 부정 선거라고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아웅산 수치 및 100여 명의 국회의원들을 강제 연금시켰다.

photo - Global News / 수도 랑군 시내 도처에 무장 병력이 점령했다. 1980년 광주를 연상시킨다.
photo - Global News / 수도 랑군 시내 도처에 무장 병력이 점령했다. 1980년 광주를 연상시킨다.

쿠데타 군이 모든 주요 도시를 장악하고 순찰하고 야간 통금 시간이 적용됐다. 버마 국민들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쿠데타로 모든 통신 시스템이 중단되었지만 다시 개통되기 이전까지는 수도 랑군의 시민들도 침묵했다.

그러나 화요일 밤이 되자 랑군 거리에서 시위의 표시로 자동차 경적과 냄비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청소년 및 학생 그룹도 시민 불복종 캠페인을 촉구했으며 캠페인에 대한 페이스북 페이지는 10만 개 이상의 '좋아요'가 표시됐다.

정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아웅산 수지의 석방을 위해 수요일부터 일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일부 의료진은 조용한 항의의 뜻에서 검은 리본을 가운에 달기 시작했다.

1980년 5월 한국의 광주 때처럼, 버마에서도 1988년 8월 8일에 랑군 시내의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반군부 민중항쟁은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됐으나, 국가평화발전위원회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새로운 군부의 진압으로 시민, 대학생, 승려 등을 포함 수천 명이 희생됐다. 결국 8888 민중 항쟁은 1988년 9월 18일 군부에 진압당했다. 다시는 그런 참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

/김상수(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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