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 기행'

제주도에서
어제 남국으로 식구 셋이 옮겨왔어요. 사나흘만 쉬었다가 갈 생각입니다. 날은 좀 궂었으나 운치가 있었지요. 우리 딸 지원이는 벌써 제주에 반했다며 여름에 다시 오자고 말합니다. 애월 해안가에서 잠시 거닐다가 친구가 있는 자성원을 찾아 차 한 잔을 대접받았어요.
표선면에서 저녁을 먹고 바닷가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름다운 하루였지요. 그래도 제 마음 속에는 유배지에서 신음하던 여러 선비의 음성이 웅얼거리고 있었답니다. 그분들의 탄식으로 남국의 사상과 문예에 깊이가 더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주에서 역사의 굴곡을 슬퍼함
아침에 애월 해안가를 끼고 길을 재촉해 국립제주박물관으로 갔지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눈물과 소망을 읽었어요. 고기국수로 점심을 먹고 자연사박물관에 갔어요. 볼 것도 많고, 공부도 많이 되었어요. 제주의 생태환경이며 풍속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시간이었지요. 다행히 지원이도 지루해하기는커녕 너무나 좋아하더군요.

천천히 둘러본 다음 삼성혈을 찾아갔지요. 우리의 수학여행은 늘 이래요. 고부량 삼성의 시조를 모신 것이야 그렇다 해도 도심의 고즈넉한 정원으로서 여유도 있고 품위가 있더군요.

오늘 기행의 절정은 4.3평화공원 순례였지요. 전시 방법도 이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더군요. 비극을 재현하면서도 예술성을 잃지 않았어요. 찬사를 드리고 싶어요.

우리 현대사의 고통을 절절하게 추체험하였어요.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 지원이가 이승만과 파렴치한 정권의 학살을 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함께 간 보람을 느꼈어요.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자연사박물관도 참 우수하다고 생각했어요. 국립제주박물관은 보수중이던데 앞으로 많이 좋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사진·글=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