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절기상 다음 주에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이 들어있음에도 아직 봄을 이야기하기엔 좀 이른 것 같습니다. 내리는 비를 보고 성급한 분들은 벌써부터 봄비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으나 이번에 내린 비는 남쪽에서 구름이 온 것이 아니라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비구름을 만들어 내린 비이기 때문에 겨울비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다가올 새봄을 영접하기 위해 야생화는 아직 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불어오는 거센 바람으로부터 꽃가루를 보호하기 위하여 밤이면 꽃을 접고 날이 밝으면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다시 꽃을 서서히 피우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짓을 다하며 가냘프지만 거역할 수 없는 생명의 노래를 시작하고 있을 겁니다.

뉴스를 보니 서울 홍릉에 있는 수목원에서는 엊그제 벌써 복수초가 꽃을 피웠다는 소식입니다. 이렇듯 작은 꽃잎 속에서도 생명의 순환과 우주의 조화를 담아내고 있는 자연 속의 야생화들은 계절의 순환에 따라 때에 맞춰 꽃을 피우는 신비한 식물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인간세상이 너무 시끄럽게 난리를 치면 자연의 순환과 조화도 리듬이 깨져 꽃들도 때를 잘못 알고 세상에 나오는 기이한 현상도 일어납니다. 근자에 우리의 혼란한 정치상황이 자연의 질서까지도 무너트리는 것 같은 현상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겨울에 노란 개나리가 꽃을 피우고 진분홍 철쭉이 꽃을 피우는 등 철모르고 나왔다가 매서운 추위로 바로 얼어 죽기도 합니다. 또한 아직 구정도 지나지 않아서 겨울은 떠날 채비도 않고 있는데 새봄은 ‘야생화’라는 봄의 전령사를 먼저 세상 밖으로 내보내 자기들한테 계절을 양보하고 겨울은 빨리 떠나라고 밀어내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세상과 자연환경은 풍수이론에서 묏자리의 좋고 나쁜 기운이 후손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원리처럼 서로 같이 반응하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이 땅에 이렇게 조급한 정치적 현실만큼이나 우리 주변의 자연에서도 벌써 꽃을 피워 세상에 봄이 왔음을 알리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의 정치상황이나 이 땅의 자연 질서가 모두 조급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모든 인간사는 순리에 따라야 하고 자연속의 야생화도 계절의 순환에 맞춰 때를 알고 꽃을 피워야 자연의 질서와 순환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연에서 야생화들이 철을 잊은 채 피어나는 것은 우리 주위를 둘러싼 자연환경이 그만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토양이 오염이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만이 신성이나 불성을 지닌 청정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산하대지와 일월성신 등 삼라만상도 모두 청정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산하대지를 종속물로 여기며 무분별하게 훼손하고 파괴해서는 안 되며, 만일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자연환경을 계속 훼손하면 언제가 인간들 스스로를 종말로 이끄는 과보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겨울에도 봄을 노래하는 시인도 있습니다. “Percy Shelley”라는 영국의 유명한 시인은 “Ode to the west wind (서풍에 부치는 노래)”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즉,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은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으니 봄은 먼저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비록 계절을 이기는 꽃은 없고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은 없지만 꽃을 피워서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변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사진·글=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