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유신·군부 독재정권 시절, 봉사와 화합 등 허울 좋은 구호들을 앞세워 국민통치와 독재체제 정당화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던 '새마을 운동'의 골 깊은 뿌리가 지금도 지역 곳곳에 기생하며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
완주군이 20억 원 규모의 새마을회관 건립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자 시민단체가 반대 서명에 나서는 등 새해 벽두부터 새마을회관을 둘러싼 갈등과 잡음이 확산되고 있다.
'새마을' 관련 단체에 대한 특혜성 지원 논란이 지역의 풀뿌리 언론과 시민사회단체가 한 목소리를 내면서 세간의 관심사로 부각하는 모양새다.
완주군, 새마을회관 신축 혈세 지원 특혜논란...왜?
완주신문이 지난 27일 ‘새마을회관 신축 혈세 지원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문제점을 짚었다.
기사는 “완주군은 지난 11일 ‘완주군 새마을운동 조직 지원 조례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면서 “공고문에 따르면 개정안은 새마을회관 건립 및 관리 등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시설의 사업비 지원을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관련조례 제3조에 ‘새마을 회관 건립 및 관리 등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사업비’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사는 “완주군은 새마을회관 건립 설계비 1억 2,000만 원을 올해 예산으로 편성했다”며 “이에 대해 완주군은 관련 조례가 아니어도 새마을운동 조직 육성법 제3조에 근거해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보였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완주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관련법만으로도 회관 건립 지원이 가능하지만 조례 개정으로 지원 근거를 명확히 하려는 것 뿐”이라며, “전북도에서 완주군과 무주군만 새마을회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완주군은 올해 설계비 예산 1억 2,000만 원에, 내년 설계비 포함 총 18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새마을회관을 건립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이어서 “새마을회관 건립은 완주군수 공약사업이기도 하다”는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함으로써 결국 논란은 현 군수의 새마을회관 건립에 관한 공약에서 불거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향력 큰 새마을연합회·새마을부녀회 지원, 선심성 의혹
“완주군 새마을연합회와 새마을부녀회 회원은 2,000여 명으로 완주군에서 가장 활발한 봉사단체라는 게 완주군의 설명”이라는 기사 행간에선 '지방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예산지원'이라는 의구심이 절로 일게 한다.
신문은 또한 기사에서 “완주군의회 모니터링 네트워크가 이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나섰다”며 “완주군에는 공익적 가치를 위해 활동하는 사회단체 및 비영리 민간단체들이 수십 개가 있다”고 전제한 뒤 “이들 단체들의 상당수가 열악한 재정으로 꾸려나가고 있고 이런 지역 사정을 볼 때 특정 단체에 사업비 지원을 넘어서 회관 건립비를 지원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익단체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단체 측 입장을 전했다.
기사는 “새마을회에 대한 특혜성 지원은 이미 다른 지역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며 “광주에서는 2017년에 새마을회관 건립 지원금 명목으로 편성된 예산 5억원이 전액 삭감된 바 있고 안산시에서도 형평성 문제로 새마을회관 건립 예산이 전액 삭감된 바 있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KBS전주방송, ‘완주새마을회관 건립 반대 시민 서명…‘특혜’‘ 보도

KBS전주총국도 29일 ‘완주새마을회관 건립 반대 시민 서명…‘특혜’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 문제를 조명했다.
“완주군이 20억 원 규모의 새마을회관 건립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자 시민단체가 반대 서명에 나섰다”는 기사는 “완주군의회 모니터링 네트워크는 자원봉사센터와 청소년 자치문화복합센터 관련 예산이 삭감되는 등 공익 단체 등의 재정 지원이 급감하고 있다며, 기관과 학교 등 빈 공간이 많음에도 새 건물 짓는 데 수십억 원을 지원하는 건 특혜"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사는 “이들은 또 조례가 제정되기도 전에 이미 일부 예산을 편성한 건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며, 이런 특혜 시비는 군을 향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고 덧붙여 보도했다.
완주군의회에서도 일부 의원들 사이에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새마을회관 신축은 옳은지 의문"이라며 "빈 공간을 활용할 것"과 "건물을 짓는 비용으로 실질적인 시민단체 사업비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들이 지역 풀뿌리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전북민언련)은 "1980년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창립되어 지금까지 전국 곳곳의 새마을회가 각종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각 지자체의 새마을회 지원이 특혜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북민언련, “형평성 맞지 않는 특혜, 유신 잔재” 지적
전북민언련은 27일 모니터보고서 '뉴스 피클'에서 "새마을회 지원의 특혜성 논란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새마을 운동 조직 육성법’이 있기 때문”이라며 “지방자치단체도 관련 조례 제정과 지원 근거로 해당 법을 따랐다고 밝히고 있지만 지원이 의무사항이 아니라 ‘할 수 있다’라는 선택사항이고 법적인 근거가 있다고 해도 특정 단체에만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 특혜이자 유신 잔재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왔다”고 밝혔다.
전북민언련은 “광주광역시는 지난 2018년 특혜 지원 논란이 있었던 새마을회 회원 자녀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새마을회관 건립 지원 예산도 없앴다”며 “최근 울산에서도 새마을지도자 자녀 장학금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김선미 울산시의원은 ‘장학금의 배경이 되는 새마을회 지원 조례는 전두환 군부 독재 5공화국 시절에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초헌법적 권력기관을 이용해 제정된 ‘새마을운동 조직 육성법’을 근거로 만들어진 조례‘라며 폐지를 주장했다”고 사례를 들었다.
이어서 “지원 근거가 되는 법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 자체가 잘못되었음에도 정치권의 법안 폐지 논의는 없는 상황”이라며 “전라북도에서도 지난 2019년 최영심 도의원이 새마을회와 의용소방단의 자녀 장학급 지급이 특혜 소지가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고, 유신 잔재인 관공서 새마을기 게양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새마을회관 건립·지원, 주민 표 의식한 선심성 공약 아니길...

또한 전북민언련은 “전라북도는 행정안전부 예산 편성 기준에 따라 대학생 대상 장학금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조례는 개정되지 않았다”면서 “새마을회가 정말로 국민들에게 봉사한다는 정신을 실천하려 한다면 ‘우리는 특별하니 지원을 받는 건 당연하다’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유신·독재 잔재가 이처럼 각 지역에 깊게 뿌리내려 지금도 조례를 근거로 혈세를 지원받거나 특혜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직이 얼마나 막강했으면 농촌 지역에선 '가장 영향력이 큰 단체'로 부를 정도다.
그러다보니 선출직 단체장들로서는 이들 단체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그러나 지역의 풀뿌리 언론과 건강한 시민사회단체들의 감시 눈이 꿰뚫어 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