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임상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위험-이익 비교다. 의학 자체가 생명체인 인간에게 강한 활성을 나타내는 물질을 이용하거나, 몸에 의도적인 손상을 입히는 과정이기 때문에 100% 안전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예상 가능한 위험을 계산해보고,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본다. 예상 가능한 이익 역시 계산해본다. 그리고 양쪽을 견주어 본다. 위험할 가능성이 적을수록, 이익을 볼 가능성이 클수록 판단을 내리기 쉽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사고방식 역시 위험과 이익을 견주어 보는 것이다. 어느 쪽이 무조건 옳고, 무조건 그르다는 주장처럼 비논리적이고 위험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우리는 내내 그런 사고에 젖어 살았다. 유감스럽게도 의사를 비롯한 소위 지식층에서 그런 이분법적 사고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생각법을 제시하기는커녕 거기 편승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한 가장 중요한 이유다. 앞으로도 1년 이상이 지나야 위기를 겨우 벗어날 수 있으리라 한다.
그 뒤로도 인류가 대오각성하여 생활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는 한 신종전염병은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하든 위험과 이익을 올바로 알고, 두 가지를 비교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이성을 잃지 않고,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지킬 수 있다. 옮긴이의 말을 여기에 적는다.
일상이 없어진 지 오래다. 할 일은 끝이 없는데, 뭔가 매듭지어지거나 마무리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임시적’이다. 식료품을 사러 가거나, 친구와 오랜만에 얼굴 보고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아주 작은 일만 하려고 해도 안전한지 따지게 되고, 때로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숨 막히듯 답답하다. 어쩌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거나, 누가 뭔가 잘못한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어려움은 두 배가 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자니 불안하고, 보내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부모님께 맡기자니 연로한 어르신들은 더 위험하다는데 그래도 될지 걱정이다.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격수업을 계속해도 학업 성취나 사회성 발달에는 문제가 없을까? 대면수업을 한다는데 학교에 보내도 될까? 아이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와 폰만 들여다보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도 부모도 운동을 못해 답답하고, 살이 찌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코로나 감염을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받아들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코비드-19 시대다. 삶의 모든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 출판계에서도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다. 바이러스와 전염병을 다룬 의학/과학책,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는 경영/자기계발서, 삶에 있어 고난의 의미와 향후 인류의 삶을 전망한 철학/인문학 책들이 두루 선보였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 억지로 짜맞춘 조잡하고 허술한 잡서부터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을 담아 속이 꽉 찬 양서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당장 현실에 도움이 되는’ 책이 드물다는 것이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차근차근 짚어주는 육아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띈 순간 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독립출판물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바로 번역 출간을 결심했다.
이 책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켈리 프레이딘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요긴한 지식을 차분한 목소리로 알려준다. 그것은 사고의 틀, 즉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지금처럼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우리는 “둘 중 하나”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히기 쉽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받아들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조금만 잘못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데 뭘 할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과 자녀의 감정을 돌보는 일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위험은 항상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아주 작은 위험, 중간쯤 되는 위험, 아주 큰 위험이 있다. 또한 우리 각자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험을 많이 축소시킬 수 있다. 아주 작은 위험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는 더 큰 위험을 부른다.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가장 안전하겠지만, 그래서는 삶을 이어갈 수 없다. 직장과 학교에 나가고, 장을 보고, 필요한 것들을 사와야 한다.
재택근무, 원격수업, 배달음식, 온라인쇼핑으로 해결한다 해도 운동부족, 비만, 불안감, 우울, 무력감 등 정신건강의 저하를 피하기 어렵다. 정기적인 진찰이나 꼭 필요한 치료를 미루면 건강을 크게 해칠 우려도 있다. 작은 위험을 받아들이고 합리적으로 위험을 줄이면서 생활을 유지하고 필수적인 활동을 이어 나가는 편이 훨씬 낫다.
그렇게 하려면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줄여나가야 할지 알아야 한다. 이 책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우선 사람에 따라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 만에 하나 감염되었을 때의 위험을 설명한다. 신생아는, 조금 더 큰 아이는, 10대는, 부모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 그 뒤로 행동에 따른 위험을 자세히 알려준다.
운동 중에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치과에 가는 것은, 학교에 가는 것은, 임신은, 여행은 얼마나 위험할까? 원격수업은 반드시 대면수업보다 안전할까? 마지막은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학교를 열어야 할까?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가족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아이가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물어보거나,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따뜻한 위로도 중요하지만, 어려울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올바른 정보다. 이 책에서 제공하는 올바른 정보, 올바른 사고의 틀을 차근차근 읽다보면 불안감이 가시면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다는 힘과 용기가 솟는다. 정보의 양으로 보면 적지 않지만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것은 저자가 의사이기 전에 엄마로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이 시대를 함께 견디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시대에도, 그 이후에도 삶은 이어져야
“하버드를 나온 의사도 이렇게 어렵구나, 공포에 사로잡히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다보면 이 어려움을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우리는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연대와 희망의 빛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계속 강조하듯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과 자녀의 감정을 돌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언론과 정치권에서 보이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민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정신건강을 해치는 주범이 바로 이들이다. 전문가를 자처하며 매스컴을 탔던 의사와 과학자들도 위험-이익을 합리적으로 평가하며 대처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조언보다 그때그때 전개되는 상황을 자기가 제일 많이 안다는 식으로 공명심을 좇거나, ‘이렇게 가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끝으로 저자는 수시로 소외층과 약자를 돌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도 이번 사태의 와중에 장애인과 노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지만, 한 사회의 진정한 가치는 소외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에 있다고 믿는다.
주변에 있는 사람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서로 버팀목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시 이 책을 읽고 약간이나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그 너머까지 살피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분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팬데믹의 시대에도, 그 이후에도 삶은 이어져야 하므로.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