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지난 가을 울긋불긋한 고운 자태의 단풍을 뽐내던 나무들도 월동준비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비움의 철학을 실천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그런데 아직도 마지막 잎새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무슨 여운이라도 남기려는 듯 슬프게 달려있는 모습이 가던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자연의 시간 속에서도 계절의 흐름과 함께 가야할 때가 되면 다 떠나야 하는데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도 계절을 잊지 못하고 그 긴 자락을 부여잡고 있다. 가고 옴이 자유로워야 하는 게 자연의 이치인데 그러질 못 한 거 같다.

인간들이 경쟁이 싫어 세상에 아무리 공존의 법칙을 세우려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우주의 법칙은 엄연한 경쟁의 원리다.

겨울이 되면 나무들도 몸통과 뿌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낙엽을 떨군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그러기 때문에 기업들도 회사가 어려우면 생산성을 고려하여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라고 본다.

자연과 우주의 일부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도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따라야 생존할 수 있다. 지구의 역사에서 우리가 경험했듯이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는 변화함으로써 진화해왔고 변화하지 못한 생물들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면 아마 많은 분들이 중학교 때 영어를 배우면서 독해를 공부한답시고 접한 영어로 쓰인 소설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가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뉴욕 어느 동네의 아파트에 사는 무명의 여류화가 존시(Johnsy)가 심한 폐렴에 걸려서 사경을 헤맨다. 그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친구의 격려도 아랑곳 없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 잎이 다 떨어질 때 자기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한다.

같은 집에 사는 친절한 노화가(Behrman)가 나뭇잎 하나를 벽에 그려 심한 비바람에도 견디어낸 진짜 나뭇잎처럼 보이게 하여 존시에게삶에 대한 희망을 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젊은 존시는 회복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밤새도록 비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잎새를 그린 노화가는 폐렴이 악화되어 죽게 된다. 동양적인 관점에서 보면 노화가의 이런 행위는 인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바로 ‘살신성인’의 정신인 것이다.

코로나로 어수선한 세상이지만 따뜻한 연말이길 기원하며.

P.S. : 이 작품의 마지막 문단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봅니다.

“Look out the window, dear, at the last leaf on the wall. Didn’t you wonder why it never moved when the wind was blowing? Oh, my dear, it is Behrman’s great masterpiece—he painted it there the night that the last leaf fell.” 

/이화구(금융인 37년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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