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요즘 조두순이 석방되면서 세상이 시끄러운 거 같다. 조두순을 보면 일부 종교에서 믿는 전지전능하신 신(神)께서 어쩌다 저런 불량품을 만들었나 싶다. 당시 조두순은 10세 미만의 여아를 성폭행하고 신체를 훼손한 죄를 지었다. 이런 짓거리를 하는 놈들은 옛날 마적떼들이었다.
최근에 읽은 김일성 평전에 보면 만주에서 노략질을 해대던 마적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만주 지역 무송현에는 "만순, 만군, 청산호, 쌍성대장궤"라고 부르는 비교적 큰 마적떼가 있었다. 특히 만주 산간지대에 사는 농민들은 일본군이나 만주군 토벌대 못지않게 토비들의 성화에 시달려야 했다.
마적떼들은 사람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고 물건을 빼았는 등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골라가면서 저질렀다. 이들은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도 없었다. 초상집에 침입하여 일행을 겁탈하고, 결혼식장을 습격하여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는 인간 쓰레기들이었다.
당시 마적떼에서 두령들은 주로 아편과 여자에 중독되어 있었다. 이들은 10대 미만의 어린 소녀들을 납치해 데리고 살다가 부하들이 공적을 세우면 하나씩 상품으로 나눠준다. 그러니 마적대 대원들은 대부분 두령이 데리고 살던 여자들을 받아서 부인으로 삼는다.
이런 내용은 조선족 출신인 저자가 직접 항일연군에 참여했다 만주에 남은 사람들이나 그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한 내용이다. 특히 저자가 만난 장청일이란 사람은 자기 아버지도 마적 두령의 부하였고, 자기 어머니도 마적 두령의 서너 번째 부인이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마적 두령들은 마적떼가 납치해온 어린 여자들을 번갈아가며 데리고 살았다는데 보통 열댓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유격대원들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는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적떼 토비들의 습격을 받으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김일성의 동생 김철주도 토비들의 손에 죽었다. 당시 만주에 살던 주민들을 대상으로 노략질을 일삼던 마적, 토비들을 만주민들은 '암적인 존재'라며 중국말로 '류자(瘤子)'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적떼들이 일부 항일연군과 함께 일본군과 싸운 적이 있지만 그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운 게 아니었고, 다시 이 者들은 불리하면 일본군에게 귀순한 후 일본군의 전문 첩자로 활동하며 항일연군을 토벌하러 다닌 자들이다. 그리고 마적떼들이 일본군과 전투 중 일본군 한두 명을 죽였을지 몰라도 마적떼들에게 살해당한 만주민이나 조선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당시 만주에 살던 주민들은 일본군이나 마적떼의 습격을 받아 가족이 다 죽고 홀로 남은 어린이나 여성들은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어 항일연군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의 여성들의 삶은 참으로 고달팠던 거 같다.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도 가족이 모두 죽고 홀로 남아 항일연군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항일연군에 참가한 여성들은 산악지대 막사에 기거하며 부대의 살림살이와 어린 아동대원들을 보살피는 일이었다. 물론 때로는 전투에 참가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당시 여성으로서 또 하나 힘들었던 일은 같은 좁은 공간에서 서로 오래 지내다 보니 서로 눈이 맞아 사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사랑하는 님이 전투에 나갔다가 죽으면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평전에 보면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온다. 이 이야기는 당시 김정숙의 두 번째 남자로 일본군이 물러가고 만주에서 남았던 여영준이란 인물이 말년에 남긴 증언이니 믿을 만한 기록인 거 같다.
당시 김정숙을 사이에 두고 항일연군의 여영준이란 대원과 지갑룡이란 대원이 서로 김정숙이 자기 여자라고 나불거리고 다니다가 항일연군 간부인 김홍법(김정숙 오빠의 친구) 에게 불려가 야단을 맞는다.
김홍범은 먼저 여영준을 불러 김정숙과의 관계를 묻는다. 그리고 다음에 지갑룡을 불러서도 물어본다. 그런데 둘 모두 서로 자기가 먼저 잤고 김정숙은 자기의 여자라고 우낀다. 그러자 김홍범은 김정숙을 불러 두 남자와의 관계를 물어보자 김정숙은 지갑룡과의 관계가 먼저라고 말한다.

김홍범은 다시 여영준을 불러 지갑룡이 너보다 먼저라니 다시는 김정숙과의 관계에 대하여 떠들고 다니지 말라고 둘 사이의 교통정리를 해준다. 이런 이야기는 광복후 중국에 남은 여영준이 말년에 증언한 내용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지갑룡을 변절자라고 기술하지만 여영준의 진술은 지갑룡이 자기가 없는 동안 김일성이 자기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을 보고 지갑룡은 부대로 돌아오지 않고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버린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항일연군에 참여했던 여자대원들은 다 남자 관계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산속에 같이 살았던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평전에는 여자 대원들의 이름과 구체적인 사실들을 다 적어놓았다.
당시 항일연군에서 같이 활동한 대원들의 증언이나 한때 김정숙의 남자였던 여영준의 증언을 들어보면 김정숙은 백발백중 명사수도 아니었고, 키가 작고 까무잡잡하고 주로 검정 치마를 입고 다녀 '깜장정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당시 이국땅 만주에서 조선 여성들이 이런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히 일본놈들이 조선을 침략했기 때문이지만, 우리는 일본놈들을 탓하기 이전에 구한말 무능한 군주와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권력싸움 그리고 허구헌날 당파싸움만 일삼던 위정자들 때문인데도, 우리는 아직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역사를 잊는 민족에 미래가 없는 게 아니라 지금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 것이다.
※사진은 봉은사에 산책을 나갔다가 햇살에 비친 도심 속의 사찰 모습이 아름다워 담은 사진입니다.
/이화구(금융인 37년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