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오늘 어느 일간지가 창간기념을 맞이하여 실시한 한국사회 갈등인식 조사결과를 보면 ''편을 가르는 정치와 자산 양극화 심화에 따른 불평등이 우리 사회를 갈라놨다.”라는 문장 하나로 정리가 다 되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대통령의 취임 공약은 공염불이 된 것 같다. 하기야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라는 서울대 교수들도 한 쪽에선 검찰개혁이 절박하다는 의견과 다른 쪽은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서로 의견이 갈라졌다.

그러니 우리 같은 민초들은 어느 쪽 의견이 맞는지 모르겠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하고(然),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不然).

그런데 요즘 총장과 장관의 싸움을 지켜보는 대통령의 처신을 보면 왕과 세자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질책하듯 던진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야! 신하들의 결정을 윤허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다.”라는 영화대사가 생각난다.

나는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자식에게 절제를 바라며, 또한 조그마한 실수나 나약함을 보여서도 안 된다는 아비의 마음이라기 보다는 자신은 절대 책임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군주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이 놈의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남쪽도 지역이나 이념에 따라 나라를 더 갈라야 세상이 조용할 거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나라는 삼국이 분할되었을 때 긴장감도 가장 팽패했고, 군사력도 가장 막강하였다. 고구려는 두 차례에 걸친 수나라와 당나라의 백만 대군을 물치친 바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삼국이 분할돼 있었으면 고려 때 몽골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고구려가 방패가 되어 몽골의 지배를 받지 않았을 것이고, 조선시대에 일본놈들에게 나라를 배앗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에 우리 민족은 단결할 줄 모르고 당파 싸움만 하고, 허세와 이기심이 많고, 공공 정신이 부족하여 단결할 줄 모르고, 지역감정에 매몰되어 분파주의 기질이 많다고 하면 당시 우리는 그 말은 일본 놈들이 우리민족을 폄하하려고 일제시대에 지어낸 말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라가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일본 놈들이 보기는 제대로 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윤치호 일기를 보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일제강점기에도 민족주의 운동세력과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평안도 지역(서북인)과 서울·경기 지역(기호파) 사이에 지역감정 (지역갈등)이 극심하게 나타났다는 점을 알 수가 있는데, 당시 안창호 선생은 “일본 놈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적이지만 기호인(서울.경기)은 500년 동안 서북인(평양지역)의 적이었으므로 먼저 기호파를 박멸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호인의 노력으로 독립을 얻을 것 같으면 차라리 독립되지 않은 게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의 지역감정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일기란 자신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고 자기성찰을 하면서 나만 보려고 쓴 글이기 때문에 진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조선의 사절단으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지 탐색하려고 일본으로 건너간 황윤길과 김성일이 돌아와서 황윤길은 일본이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김성일은 전쟁은 없을 거라고 보고한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의 특성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Role-Model Case가 아닌가 싶고, 이런 구태는 아직까지도 우리 후손 정치인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김성일이 선조 앞에서 “나마저도 일본이 침략할 것이라고 말하면 임금과 조선의 백성들이 불안해 할 것 같아서 우국충정에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거”라고 보고했다는 변명이 우리민족의 정치성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멍청한 놈이 상황 판단을 잘못하면 집안만 망하고 말지만, 똑똑한 놈이 상황 판단을 잘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우리의 잘나고 똑똑한 정치인들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정확한 상황판단을 해줬으면 한다. 

 /이화구(금융인 37년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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