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상업번역을 그만두기로 했다. 10년 넘게 해온 일이다. 손에 익고, 노하우도 많다. 이쪽을 잘 아는 사람이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재미있고 보람있는 프로젝트도 많이 했다.
그러나 애초에 먹고사니즘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솔직히 하루 너댓 시간만 일하면 어지간한 봉직의 수준의 수입이 되니 아깝긴 하다. 당장은 좀 쪼들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출판사에 돈을 쏟아붓지 않아도 되니 그런대로 버틸 수는 있으리란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다. 인간의 삶이 역사와 실존의 교차점에서 펼쳐진다면, 좋은 의학은 역사와 과학의 접점에서 탄생한다. 그 접점을 꿰뚫는 책들을 보면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다. 의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 공부도 해야 하고, 쓰고 싶은 글도 있다. 반면 체력과 정신력은 조금씩 기울어 간다. 원래 아쉬울 때 그만 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 법.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놓아야 할 것이다.
새해에 꿈꿀자유는 세 가지 새로운 방향을 추구한다. 첫째는 복간, 둘째는 동업, 셋째는 지식 직거래다. 우리는 아직 지식 생산국보다 수입국에 가깝기 때문에, 출판시장에도 원저보다 번역서가 훨씬 많다. 번역서는 원 출판사와 계약 기간(대개 5년)이 끝나면 계속 내기가 쉽지 않다.
모든 책이 출간 직후에 가장 많이 팔리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혀진다. 하지만 5년 계약이 종료되면 다시 원 출판사에 돈을 내야 한다. 매출이 재계약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작으면 책을 계속 내기 어렵다. 좋은 책이 절판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7년 전 오늘 페북에 올린 글이 있다. 혹시라도 출판으로 돈을 번다면 모두 재투자한다, 음지에서 열심히 정진하는 번역가들을 도와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올해 조금 돈을 벌었다. 항상 출간 상태를 유지해야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절판된 책들을 되살려보기로 했다.
내년에는 아주 긴 책을 번역하느라 다른 책을 붙잡을 여유가 없기도 하고, 복간을 하면 처음 번역한 분에게 크진 않아도 번역료를 드리게 되니 번역가들께도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다.
혹시 예전에 번역한 원고가 있는데 정말 좋은 책이라 소개하고 싶은 번역가 선생님이나, 이런 책은 너무 아까운데 복간해보자고 건의할 독자가 있으시면 언제라도 대환영이다. 페이스북 메시지나 회사 메일(smbookpub@gmail.com)로 연락주시면 된다.
다만 아직 분야를 넓힐 여력까지는 없으므로 의학이나 생물학 관련 도서면 좋겠다. 둘째 동업, 셋째 지식 직거래는 꽤 재미있는 생각인데, 여기에 관해서는 차차 쓰기로...
/강병철(소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