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1.
우리 시민이 모르는 사이에 새 잡지가 창간되었지요. 2020년 겨울에 “모시는사람들”에서 그 옛날 일제강점기의 희망이었던 잡지 <<개벽>>을 복간하였답니다.
실로 100년 만의 일입니다. 당초 <<개벽>>은 1920년 창간되어, 그 시대 인류가 처한 위기를 조선인(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우리 나름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 애썼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역사적 혼란 속에 빠져 있는데요. 《다시개벽》은 인류사적 반성의 토대 위에 선다고 선언합니다. “남성-이성애-서구-성인-자본가-인간” 중심의 역사를 청산하려고 노력한다니,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2.
<<다시개벽>은 다음의 네 가지 지향점을 천명하였습니다. 하나하나가 뜻이 있는 시도라 여겨져 그대로 적어보렵니다.
“첫째, 서구 이론에 의존하는 한국 인문학 담론의 현실을 비판한다.
둘째, 한국 인문학계에서 자생적 사유를 시도했던 흔적을 재검토한다.
셋째, 지구 생명의 전면적인 위기를 야기한 인간-이성-민족-국가 중심주의로부터 포스트휴먼의 사유, 지구적 사유, 민족-횡단적 사유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넷째, 한국 자생 사유가 창조적 주체성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류사적 위기 극복을 위한 세계적 보편성까지 갖추고 있음을 다시개벽의 관점에서 해명한다.”
3.
이번에 나온 창간호는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고민한 것으로, 책의 부제를 “서구 근대 백여 년에 운이역시 다했던가”라고 하였어요. 책에 실린 여러 글을 거두절미하고 간단히 요약해 봅니다.
- 조성환은 『개벽』 창간호를 검토하여 그 당시 이 잡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는지를 살폈습니다.
- 김정은은 우리 학문의 식민성을 비판하기 위해 조한혜정의 책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뜯어봅니다.
- 조한혜정은 삶과 앎이 통합될 때만 삶이 재미를 회복한다고 주장합니다.
- 홍승진은 현실의 고통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면 서구 이론에 매달리면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 방민호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도 서구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며,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 차은정은 서구 근대의 우주론을 벗어나 영성(靈性)의 세계를 인정하는 우주론을 찾고자 노력하지요.
- 성민교는 ‘중심’의 해체를 통해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 김춘규는 목적과 수단이 뒤집힌 서구적 지식을 추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합니다.
4.
이번에 나온 <<다시개벽>은 우리 시민을 새로운 지적 도전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서구의 합리적 세계관을 탈출하여 “세계의 재주술화”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문제만 있지, 시원하게 답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자는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세계의 재주술화는 인간 중심의 자연 지배 방식으로는 더는 인류가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일만 년 전 채집 수렵의 원시생활을 하던 때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은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21세기다. 이제 우리는 인간 아닌 것들로부터 미래의 철학을 모색해야 하겠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