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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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 메르켈이 총리로 취임할 무렵, 독일 경제는 최악이었다. 5백만 실업자를 부양하느라, 독일은 자국의 헌법은 물론이고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정한 한계를 무시하고 국가채무를 250억 유로나 더 불렸다. “절약과 개혁 대신 복지혜택”을 선택한 그 정책은 결국 성공했다.

그리스 신정부가 2015년 초에 도모하는 일은 그때 독일 정부가 취한 조치와 동일하였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십 년 전 자신이 펼친 정책을 그리스 신정부에게는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스 신정부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옳았을까? 사회적 빈곤이 극심한 처지라서 더 이상의 ‘절약’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치프라스가 트로이카를 비난하며, 국가적 “자부심”과 “존엄”을 침해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은 말이었다.

그보다 5년 전인 2010년 11월, 쇼이블레 독일 재무상은 소르본 대학교에서의 한 강연에서, “독일은 유로존의 단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경제학자 킨델 베르거를 인용하며, “유럽연합 내부의 안정성은 국가적 이기심을 버릴 때만 완성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독일이야말로 그리스와의 관계에서 쇼이블레의 말을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다. 그러나 쇼이블레는 이미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채권국가라고 해서 복잡한 속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 독일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고질적인 문제가 많았다. 우선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였다. 2015년 현재 독일의 대도시에서는 25초마다 한 명이, 쓰레기통을 뒤져 타인이 먹다 남긴 음식 부스러기를 찾는 실정이었다. 도시빈민의 문제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최근에는 농촌에도 빈 집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등, 사회 전반이 붕괴 조짐을 보였다. 또 산업구조 역시 위기상황이었다. 1차 산업은 물론, 줄곧 독일의 자랑거리였던 자영업과 중소기업도 사양길에 처했다. 게다가 만성적인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인구 역시 감소세다. 독일 사회는 여러 가지 미해결의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본래 유로화는 유럽의 공존공영을 위해 도입된 것이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약소국 그리스도 그렇지만 독일의 경우에도 많은 시민이 유로화로 인해 피해를 보아왔다. 비유하면, 미국의 소수 지배자들이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이른바 ‘양적 완화’ 즉 인플레이션을 결정하거나 또는 그와 정반대되는 정책을 펴는 것과 같다.

그때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런 사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영토와 시장의 규모만 키우면 경제가 성장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단순한 생각이다. 현 체제 아래에서는 경제규모가 확대되면 자본과 기술이 집중된다. 이것은 해당 사회의 관리와 통제의 권한을 전문가들의 수중에 일임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교양 높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국가의 사무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직접민주정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정치적 영감의 근원이다. 트로이카의 횡포에 경악한 현대 그리스 시민들이 시리자를 선택한 것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시민들은 시리자가 일방적인 명령을 일삼는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시민의 견해를 따르는 정의로운 정치세력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지지했다. 시리자는 과연 그리스의 국난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이 귀추를 궁금하게 여겼다. 

치프라스 총리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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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동안 갈팡질팡한 끝에 치프라스 총리는 유럽연합의 압력에 완전히 굴복하였다. 2015년 6월 27일, 그리스 정부는 국제 채권단이 제안한 협상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치프라스는 시민들에게 협상안의 거부를 호소했다.

이에 호응해 같은 해 7월 6일, 그리스 시민들의 61.3%가 협상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고는 기상천외의 반전이 일어났다. 치프라스 총리는 시민들의 압도적인 견해를 묵살하고 유럽연합의 요구에 무조건 항복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일어났을까?

그 당시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로웠다. 그리스 시민의 85%는 유로존에 남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치프라스의 해석에 따르면, 시민들은 자국이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남아있으면서, 국가채무도 감면받고 경제부흥계획도 세우기를 바란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장을 명분 삼아, 치프라스는 하루아침에 시리자의 강경투쟁 노선을 포기했다.

시리자 내부로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재무장관 바루파키스가 이끄는 당내 좌파는 분노했다. 바루파키스는 곧바로 장관직을 사임했다. 곤경에 처한 치프라스는 집권하기 전만해도 “부패집단”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던 보수당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정권을 유지하는 형편이 되었다.

메르켈 총리와 쇼이블레 재무장관으로 대표되는 독일 정부는 치프라스 정권의 약점을 철저히 악용했다. 그리스가 어떠한 경우에도 유로존에 남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독일은 그리스에게 전혀 양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유럽연합의 이름으로 그리스에 대한 재정지원을 계속하되, 치프라스에게서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낸다는 방침을 세웠다.

2015년 7월, 그리스는 유럽연합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은행을 폐쇄하고 시민 1인당 하루에 20유로의 현금 인출만을 허용하였다. 그리스 시민들은 일주일 동안 그런 고통에 시달렸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채권국가들은 그리스가 트로이카, 정확히 말하면 독일은행자본의 요구에 완전히 굴복할때까지 고통을 강요하였다. 

정의의 외침은 미약하기만 

그때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을 좌우하는 독일의 전횡을 차단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프랑스의 국익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제대국 독일을 상대하기에는 프랑스의 힘이 부족하였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그리스의 입장을 이해하고 편드는 것 같아 보였으나, 아무런 실제적 도움도 주지 못했다.

독일의 야당인 녹색당과 좌파연합은 독일 정부의 가혹한 처사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리스 시민에 대한 약탈적이고 파괴적인 행위를 독일 정부는 즉각 중지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하라!”허나 이 또한 명분론에 그쳤다. 사회적 약자의 편임을 자처하는 사민당마저 기민당과 대연정인 상태라, 메르켈 정부를 견제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사회당 일각에서는 독일측이 그리스 시민을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가혹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듯하였으나, 체면치레에 불과하였다.

독일 정부의 시녀들은 곳곳에 있었다. 독일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놓인 구 동구권 지역들과 인접국인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도 유럽연합 안에서 사사건건 독일의 조치를 지지했다. 그들은 그리스 정부가 제출한 재정개혁안의 흠을 잡으며, 더욱 강도 높게 연금제도와 세제를 개혁하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국유재산인 그리스의 공항 및 항만도 국제자본에게 매각하라고 요구했다. 오늘날까지도 독일의 몇몇 은행을 비롯한 초국적 자본은 그리스의 주요 시설들을 헐값에 불하받고자 애쓰는 모습이다.

식자들은 2015년 6월 하순, 국민투표 직후 치프라스 총리가 ‘디폴트’(국가부도)를 선언했어야 옳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는 유럽연합의 약탈적 성격을 온 세계에 폭로하고 홀로 서기를 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바루파키스가 재무장관 시절에 주장하였듯 그리스 시민뿐만 아니라 억압받는 지구상의 모든 시민들이 허울뿐인 현재의 세계체제를 부정하고,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선언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한때 용감하였던 치프라스 총리의 급작스런 변신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한동안 비판이 쏟아졌다. 권력욕 때문에 그는 강대국들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는 견해가 압도적이었다. 평범한 시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좌파 선동정치가’의 표본이 되었던 치프라스는 정치적 신념보다 이익을 선택하였다. 반면에, 재벌가의 후예인 바루파키스는 자본의 속셈을 꿰뚫어보고, 그에 굴복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리스의 상황은 역설적이다.

세상일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지식인들의 평가와는 달리,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그리스 시민들의 신뢰도는 여전히 높았다. 그가 시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지 두 달 후, 즉 2015년 8월 현재까지도 그의 지지율은 60%를 넘었다. 그리스 시민들은 치프라스 총리가 유럽연합을 상대로 혈투를 벌인 끝에 어쩔 수 없이 항복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2015년 9월, 치프라스는 자신의 ‘배신’을 탓하는 당내 좌파와 결별하고, 당내 잔류파를 결집해 재선거를 치렀고, 다시집권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의 앞날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집권여당 시리자는 본래의 집권 명분인 ‘대국민공약’을 하나도 지키지 못하였다. 

'생태주의 역사강의'(한티재, 2017)

트로이카의 긴축정책은 도리어 이전보다 강화되었고, 그리스의 국가채무가 감면될 전망도 완전히 사라졌다. 게다가 집권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약자를 보호할 사회안전망은 점차 약화되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해결되지 못한 채 원점을 맴돌고 있다.

세계의 주요 언론은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이 금년 중에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2017년 2월 11일 현재) 그리스 사태의 진실을 캐면 캘수록, 현대국가의 운명은 초국적 자본의 힘에 떠밀려 벼랑 끝까지 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만 더욱 깊어진다.

※출처: 백승종, <생태주의 역사강의>(한티재, 2017)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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