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툭하면 역사분쟁이 일어난다. 오늘날 이것은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폴란드는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교과서가 잘못되었다며 매서운 비판의 칼을 휘두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도 풀지 못한 역사문제가 있다.
사태가 더욱 심각한 것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역사교과서 논쟁이다. 지난 세기 말부터 남북한 당국은 여차하면 중국 및 대만과 힘을 합쳐,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질타해 왔다. 일본 제국주의의 해독이 동아시아 이웃 국가들에게 심각한 외상(트라우마)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침략과 지배 및 종속의 뼈아픈 역사가 펼쳐진 곳마다 역사분쟁이 계속된다.
현재의 역사교과서로는 화해와 평화의 가치를 구현하기 어렵다. 오히려 상대 국가를 시기하고 증오하는 마음만 키우는 것이 아닐까 염려스런 점이 있다. 국가주의 역사교육의 부정적 역할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에 관한 공감대조차 널리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 나라 영토를 넓힌 광개토대왕은 위대한 정복군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침략을 일삼은 요물이라는 식의 잘못된 역사인식이 팽배해 있다.
역사교과서가 국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유감이다. 싸구려 애국주의에 물든 역사학자들은 이에 편승하여 전쟁과 폭력까지 정당화한다. 그래서 각국의 역사분쟁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문제에 관해 제법 견고한 공조체제를 구축한 듯 보이는 나라들 간에도 오히려 분쟁이일어난다. 그 일례를 우리는 한·중 양국 간에 발생한 고구려사 논쟁에서 본다.
2002년부터 중국은 5개년 동안 2조 원의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 부어, ‘동북공정’이란 대형 국책 연구과제를 추진하였다. 이 사업은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고대사에 편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한국이 거세게 반발할 것은 미리 예측된 일이었다.
한국은 고구려의 존재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한국의 영문 명칭 코리아Korea가 고구려라는 국호에서 유래된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지금까지 간행된 동아시아의 모든 역사책에서도 고구려는 항상 한국사의 일부였다. 이런 관계로 고구려사를 뒤늦게 자국사에 편입시킨 중국의 조치를 한국인들은 용인할 수 없다.
중국의 억지는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분쟁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사분쟁은 대체로 일방적인 억지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승부는 시원스럽게 가려지지 못한다. 관련 국가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가운데 역사적 진실이 실종되기 때문이다.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도 그 본질은 똑같다. 사태를 더욱 구제불능으로 이끄는 것은 애국심에 눈먼 시민들의 외침이다. 자국 정부의 호령에 따라 꼭두각시놀음을 벌이는 역사학자들의 몰지각도 가관이다. 계관시인을 연상케 하는 이런 역사학자들이 허다한 세상이다.
고대부터 역사가들은 권력의 시녀 노릇을 담당할 때가 많았다. 19세기 서구에서 근대국가가 전성기에 이르자 많은 학자는 역사학의 학문적 객관성을 부르짖으며 과학화를 추구했다. 그럼에도 근대의 역사학은 정치권력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를 존재했던 실제 모습 그대로’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서술하겠다고 다짐한 이는 독일의 실증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였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의 맹세를 충실히 지켜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는 정치적으로 우파 부르주아 계급을 적극 지지했다. 덕분에 평생 보수적인 국가권력과 아무 갈등도 겪지 않고 그 보호 속에 안주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프로이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작위까지 하사받았다.
랑케의 제자들 가운데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동경제국대학을 무대로 이른바 근대적 역사학을 전수했다. 그들의 지도 아래 실증주의 역사학을 배운 근대 일본의 역사가들은 이른바 그 국익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들은 대일본제국의 영광과 발전을 위해 자국사는 물론, 이웃나라인 한국과 중국의 역사까지 조작해댔다. 악명 높은 황국사관과 식민사관이 그렇게 탄생하였다.
근대역사학의 타락은 히틀러의 독일제국이나 스탈린의 소비에트 연방에서도 여실히 목격되었다. 19~20세기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또는 이탈리아에서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때 역사학의 다양한 흐름이 형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수 역사학자들은 국가권력에 맹종하였다.
해방 뒤 남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사학자들은 ‘자본주의 맹아론’ 등을 내놓으며 국가가 추진한 근대화 프로젝트를 측면에서 지원하였다. 정권과 대결하지 않는 모든 역사학자를 어용이라고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그들이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정권의 요구를 순순히 따랐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이다.
세상의 권력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역사의 정치적 이용가치를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야합의 유혹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것은 ‘세계화’와 ‘자유무역’, ‘다문화’의 구호가 난무하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가치관은 많은 시민이 한물간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는 국가주의 또는 제국주의의 망령이다. 근대 민족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역사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근대국가는 자연과학의 발전 위에 산업혁명을 이룩하였다. 빠른 속도로 계속된 산업화는 시장의 확대를 요구했다. 정치권력은 이를 빌미로 권력을 집중시켰다. 이것이 결국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비화했다. 세계 곳곳에서는 식민지 쟁탈전이 일어났으며, 결국에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낳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자 전승국인 초강대국의 거대자본이 세계경제를 지배하였다. 근대의 역사학은 이러한 일련의 변화에 발맞추어, 일직선적 역사발전의 도식을 만들어냈다. 당연하게도 그들이 쓴 역사교과서에는 산업화 또는 근대화를 미화하는 내용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역사교과서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화 과정으로 수렴되는 정치, 경제, 문화적 제 현상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있다. 무언중에 그런 것들이 국가와 민족의 이익으로 간주된다. 역사교과서 곳곳에는 부국강병을 의미하는 왕권강화와 중앙집권화에 대한 칭찬이 쏟아진다.
특히 한국사 교과서에는 고대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왕권강화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의 왕권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한국은 ‘군약신강’
의 나라, 즉 임금은 권위가 없고 대신에 신하의 권력이 강성했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역사교과서는 도시, 상공업 및 각종 기술의 발전에 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하지만 18~19세기 서울은 동시대 중국이나 일본의 대도시들에 비해 그 규모가 비할 수 없이 초라하였다. 당시 한국에는 인구 10만을 넘는 도시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과서는 도시의 대대적인 발전을 이야기한다. 실증적 자료가 결핍된 주장이다.
요컨대 우리 역사교과서에는 각종 분야에서 산업화를 지향한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고 기술한다. 웬만해서는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운 농업분야에서조차 생산기술이 간단없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계속적으로 증대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업생산성의 역사적 변천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앵무새처럼 노래하는 역사교과서의 서술이 과연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는지 의심스런 부분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근대주의자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한 허다한 주장들이 교과서에서는 마치 철저히 입증된 기정사실처럼 서술되어 있어 유감이다. 이 모든 것은 산업화 제일주의가 낳은 병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편향성이다.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모든 사건과 사실을 중앙권력의 입장에서만 서술한다. 자연히 서울에 관한 서술이 지면의 과반을 차지한다.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기껏해야 중앙권력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 때에만 겨우 한쪽 모퉁이에 등장한다. 중앙 중심 역사서술의 폐단이 이러하다. 혹자는 이를 변명하며 애국심을 키우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뼛속까지 국가주의적이고 서울 중심적인 발상이다.
더 이상 지방을 중앙의 식민지로 간주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시민에게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한 희생을 은연중 강요해서도 안 된다. 애국주의의 미사여구로 분칠된 민족주의 역사의 탈을 내던질 때가 되었다.
여태껏 관행적으로 지방과 대다수 시민을 타자화해 온 국가권력 중심의 역사관을 종식시키자. 시민을 소외시키는 역사책은 결국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출처: 백승종, <<생태주의 역사 강의>>(한티재, 2017)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