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역방송, 해법은 없는가?-박민(참여미디어연구소장, 언론학 박사)

박민 소장(언론학 박사)
박민 소장(언론학 박사)

지역방송이 위기라는 진단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지속가능한 해법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제도의 일부로서 미디어시스템은 해당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제도와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지역방송의 문제 역시 서울공화국으로 불리는 기형적인 한국사회의 모순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논의가 지역방송의 경영상의 위기와 그 극복을 위한 정책적, 제도적 방안 마련이라는 내러티브를 유지해왔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지역방송이 처한 위기의 심각성은 비단 경영상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널리즘 기능을 축소하고, 방송 외적 이윤창출에 집중하는 방송사의 위기대응 방식은 지역방송의 존재이유를 훼손시키고 있다. 정작 위기의 실체는 ‘저널리즘’이자 ‘지역성’이다.

특히 지역 공영방송은 공론장의 왜곡에 맞서 공론장의 공공성과 유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공적책무를 갖는다. 사회공간으로서의 지역이 다양한 권력관계의 경합과정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방송 전략은 ‘방송’이 아닌 ‘지역’의 문제와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지역방송 활성화의 관점에서 대안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 글은 기존 지역방송 활성화 연구의 틀에서 탈피하여 지역의 정치・경제・시민사회 영역의 의제 형성 과정을 조사하고, 바람직한 지역공영방송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안하려는 목적에서 진행된 전북지역 TV방송 3사의 미디어 의제 설정 적절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연구 개요는 다음과 같다. 우선, 2018년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동안 전북지역에서 다뤄졌던 주요 미디어이슈(43개)를 추출한 후 이를 지역 TV방송 3사와 비교분석하였다. 주요 미디어이슈는 해당 기간 지역TV방송 3사(KBS전주방송총국, 전주MBC, JTV전주방송)의 보도 및 지역 주요신문(전북일보, 전북도민일보, 전라일보, 새전북신문)의 보도 중 비교적 보도비중이 높은 사안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또한 이 가운데 지역사회 내 이해관계의 경합이 상대적으로 치열한 사안(10개)을 별도로 선별하여 TV방송 3사를 비교분석했다. 이해관계의 경합이 치열한 사안일 경우 단순 보도량 비교로는 미디어의제의 적절성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역단위 거점도시 중심의 의제설정에서 배제된 또 다른 소수자공론장, 왜?

다음으로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시군지역단체, 공동체미디어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각각의 미디어이슈 및 속성의제에 대해 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지역단체들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설문대상으로 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시군지역 단체를 선별한 이유는 이들이 지역공론장에서 소수자공론장으로서 기능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공론장이론에 대한 평가에서 공공성에 대한 비판은 주류공론장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 소수자공론장의 존재와 관련된다. 태생적으로 소수자 배제라는 한계를 안고 출발했던 부르주아 공론장은 현대사회에서도 비슷한 양태를 재현된다.

특히 불균형발전전략의 희생양이었던 지역사회에서 토건사업 중심의 지역성장연합과 경쟁하는 소수자공론장은 지속가능한 성장 및 생태적 삶의 질을 앞세우는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수렴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시군지역 단체들의 경우 광역단위 거점도시 중심의 의제설정에서 배제된 또 다른 소수자공론장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미디어의제에 대한 평가는 해당 사안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은 집단을 대상으로 수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시군 지역단체들이 미디어의제 평가대상으로 선별된 이유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지역은 미분화된 단일체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권력과 자원배분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경합의 장이다. 특히 개발이슈를 중심으로 연합한 지역내 성장연합은 지역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는 상징적 존재다. 여기에는 지방자치단체 등 관료집단과 소지역자본을 필두로 이들의 이데올로그를 자처하는 전문가그룹 및 미디어집단이 포함된다. 특히 주류미디어는 지배블럭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거나,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이슈를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 성장연합의 일원으로 편입된다. 그 결과 지역사회 공론장은 위기에 직면한다.

지역공영방송은 기울어진 공론장을 바로잡을 공익적 책무를 지닌다. 구체적으로 주류공론장에서 배제된 소수자공론장을 활성화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등 관료집단과 개발이익을 앞세우는 소지역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비판, 견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새만금 관련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새만금공항 문제는 새만금개발의 필수 인프라로서 예타면제를 통한 조속한 건설을 촉구하는 지역내 여론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지역공항들이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경제적 타당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갈등사안에 대해 지역언론이 어떻게 접근하는지 분석한 결과 분석대상 리포팅기사 29건 가운데 28건이 예타면제의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1건(전주MBC 5월 16일자 [새만금국제공항 예타면제 가능?])조차 국제공항 조기건설을 위한 전라북도의 논리개발이 다소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으로 사실상 예타면제의 필요성을 반영한 보도였다.

이에 반해 수용자들은 공항입지 문제를 1순위(201점)로, 예타면제의 적절성 평가를 2순위(183점)로, 예타면제 필요성(171점)을 마지막 3순위로 평가했다. 즉 지역언론에 새만금공항 조기건설에 대한 비판적 의견은 설자리가 없다는 의미다.

‘want to know’ 인가?, ‘need to know’ 인가?

선거보도 과정에서 소위 ‘경마식 보도’는 늘 논란거리다. 수용자가 원하는 것을 보도할 것인가 아니면 알아야 할 것을 보도할 것인가와 관련된 저널리즘의 오랜 숙제이기도 하다.

미디어이슈 분석과정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다수 발견된다. 일례도 전북대학교 총장선거 관련 이슈다. 전북지역에는 전북대학교를 비롯하여 원광대학교, 우석대학교, 전주대학교, 군산대학교 등 여러 종합대학이 존재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이들 대학의 총장선거가 치러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북대학교 총장선거에 대한 지역언론의 관심은 좀 더 특별하다. 이슈의 중요성과 무관하게 전북대에 대한 관심은 압도적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의제설정의 문제다.

이번 전북대 총장선거를 관통했던 중요 이슈는 학내 구성원들의 투표참여문제와 선거 막바지에 불거진 경찰의 선거개입 논란이었다. 투표권 논란이 맥락적 정책이슈라면, 경찰의 선거개입논란은 일탈적 발생사건이다. 이 중 어떤 이슈가 본질적인가는 뉴스가치에 대한 언론사의 고유 판단영역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방송이 갖는 공익적 책무에 비추어볼 때 아쉬움이 남는다. 투표권 논란보다 경찰의 선거개입 논란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은 지역지상파방송의 의제설정(1단계 의제설정)과정에 대한 고민지점이다. 원하는 것을 보도할 것인가 아니면 알아야 할 것을 보도할 것인가.

전북권 방송인가?, 전주권 방송인가?

미디어이슈에 대한 중요도 평가에서 수용자평가와 언론보도 간 간극히 컸던 사안 중에는 시군지역 이슈가 다수 포함된다. 일례로 지역시민사회단체 등 수용자들은 중요한 이슈로 평가했지만 지역방송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룬 이슈들에는 <전북대병원 의료서비스에 대한 점검>이나 <재량사업비 논란>, <한빛원전>, <청년정책>, <완주산단 폐기물 처리문제>, <진안 마이산 케이블카 설치논란>, <진안 용담댐 수질관리 실태 및 해법> 등 이었다. 특기할 만한 부분은 이 중 대부분이 전주시 등 3시 지역 외의 시군지역 이슈였다는 점이다. 전북권역을 방송권역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전주시를 비롯한 3시(전주시, 익산시, 군산시)를 중심으로 한 의제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특히 이를 KBS전주방송총국의 사례로 좁혀보면 그 격차가 더 커진다. 실제로 KBS전주방송총국이 리포팅한 기사량을 보면 <한빛원전><진안 용담댐><완주산단 폐기물>이 각각 0건이었고, <마이산케이블카 설치 논란> 보도는 단 1건에 그쳤다.

시군지역 의제에 대한 외면은 무의제화에 대한 설문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지역방송들이 외면하는 이슈와 관련한 질문에 가장 많은 답변이 시군단위 지역이슈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는 시군 지역 역시 주류공론장에서 외면받는 소수자공론장의 처지임을 확인해준다. 결국 지역방송 정상화가 지역공론장의 정상화를 지향한다고 할 때, 지역공영방송이 주류공론장에서 배제된 다양한 공론장들 사이의 중재와 커뮤니케이션 통로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참고>

이 글은 필자가 2019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2019.5.25. 충남대)에서 발표했던 <소수자공론장과 지역공영방송>을 요약 정리한 것임.

/박민

(현 전북민언련 참여미디어연구소장, <전북CBS> 사람과사람 진행자, 전북대 신방과 강사)/ <사람과 언론> 제6호(201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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