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한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 속 길은 알 수 없다는 것과 같이 평생을 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 전에 한 사람의 마음 속 깊이가 넓고도 깊다는 것을 알고서 쓴 글이 있다. 책을 보다가 무심결에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것이 대중 가수 나훈아의 기자회견이었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꿈을 이야기했다.
“제 가슴에 꿈이 없으면 노래를 못합니다. 지난번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며, 내가 꿈이 바닥나 다시는 공연을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꿈이 차야, 꿈이 가슴에 가득해야 노래를 할 것 같아서 삼척에서부터 강원도 뭐냐, 선비들이 한양 까지 걸어갔던 그 길을 서울을 향해 걸었고..."
그(나훈아 씨)의 말대로라면 동대문에서 평해까지 우리가 걸었던 관동대로를 거꾸로 걸은 것이다. 남원을 거쳐 뱀사골에서 산청 쪽을 향해 강 길을 걸었다. 그 길은 통영대로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많아 외국으로 나가 여행을 많이 했다.
그런데 "괴소문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고 시집도 안간 노처녀들로(?)까지 이어져, 지난 일요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결국 기자회견을 자청할 수밖에 없었다"는 나훈아 씨의 말. 그래,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일이고, 사람의 일이다.
스스로의 작은 성취감이나 이익을 위해, 기자들의 말에 의한다면 '알 권리를 위해', 사람들은 남의 상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남의 목숨까지 왔다 갔다 하는 일들을 주저함도 없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저지른다.
그러나 한 사람이 우주라고 볼 때 우리 모두는 제 나름대로의 독립된 우주일 것이다. 서로 다른 우주를 인정하고 공경하며 사는 것이 바른 삶의 자세가 아닐까?
“인생 여정의 발걸음 그 무엇과 같으리.
바로 나는 새 쌓인 눈을 밟은 것과 같다 하리.
눈 쌓인 흙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기지만,
그 새 동으로 갔는지, 서로 갔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
옛날에 만난 노승은 이미 죽어 새로운 사리탑이 들어서고,
허물어진 벽에는 옛 시의 자취를 볼 수 없도다.
지난 날 험난했던 여정 아직 기억하는가?
긴 노정에 사람은 지치고 절름발이 당나귀는 울어대네.“

소식의 시 한 편이다. 지난밤에 나도 한편의 총천연색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그 주인공들을 지켜보며 먼 곳으로의 여행을 했다. 여행 중에 내 머리를 스치던 생각, 지금 우리들은 ‘인터넷’이라는 이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정체불명의 기체를 타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한 질주에 몸을 내 맡긴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누구나 금세 왔다가 금세 사라져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문득 나훈아씨가 다시 보였다.
그의 말대로 엉망진창이 된 그의 가슴에 가득 꿈이 채워져 다시 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노래도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만 사람은 진실을 말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세상은 그러고 보면 살아볼만하다.

무자년 정월 스무엿새 그때가 <무자년 정월 스무엿새>였으니까 2007년 1월 26일, 오랜 세월 저편이었다.
그때 이런저런 길을 걸었던 것을 말하며 꿈을 이야기했던 가수 나훈아씨가 세계의 현자 소크라테스에게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하며 나타나 사람들의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걷기, 누구도 대신해서 걸어 주지 않고 그래서 가장 정직한 것이 걷기라서 마음 수행에 가장 좋은 것이 걷기다. 나 역시 지난 세월을 잊기 위해 살기 위해 걸으면서 진정한 나를 발견했지 않은가?
”보지 않은 것은 말하지 마라.”
풍수지리학의 명제다. 오래 걸어야 알게 된다. 삶의 비밀을, 그리고 노래할 수 있다. 세상을 향하여, 가수 나훈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는 노래를 부르기를 기원하며.
/사진ㆍ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