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커맨더 인 치트 - 골프, 사기꾼 트럼프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다'(릭 라일리 저, 김양희 역, 생각의힘, 2020)

<커맨더 인 치트 - 골프, 사기꾼 트럼프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다>(릭 라일리 저, 김양희 역, 생각의힘, 2020)

1.

“골프, 사기꾼 트럼프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다”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스포츠 기자입니다. 그런데 왜, 그가 이런 책을 썼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어요.

오래전부터 골프 세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큰 두통거리였던 것입니다. 그쪽 세계에서 그는 악명 높은 사기꾼이었다, 이것입니다!

저자 라일리는 다양한 골프 관련자들을 만나 트럼프에 관한 증언을 수집합니다. 무려 100명 이상이 저자에게 트럼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트럼프의 거짓과 진실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인 거죠. 사기꾼 트럼프가 또다시 미국과 세계를 분탕질하겠다고 벼르고 있지요.

미국 민주당에는 트럼프를 위협할만한 경쟁자도 없는 상황이라, 코로나바이러스 19번이 트럼프를 혹독하게 처벌하지 않는 한 그의 재선은 이미 ‘따놓은 당상(堂上, 당상관의 줄임말)’, 즉 예정된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지요(2020년 3월 25일 현재).

그런데 코로나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결국 트럼프는 망하게 되었어요. 조 바이던의 인품과 능력 못지 않게 방역 실패가 트럼프에게 정치적 파산을 안겨준 셈입니다.

2.

저는 트럼프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런 저에게 이 책은 읽는 내내 큰 즐거움을 선사했지요. 골프를 소재 삼아 저자 라일리가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거든요.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만난 프로 골퍼와 캐디 등이 증언한 내용을 종합하면, 희대의 타고난 사기꾼 트럼프의 초상화가 저절로 완성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말하기를,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라고 하지요. 맞는 말일 텐데요. 트럼프가 개입하면 골프도 최악의 사기극이 되고 맙니다.

트럼프는 골프를 사랑하지요. 그는 골프장을 만들고, 운영하고, 사들입니다. 그 자신의 주장대로라면 지구상에 열네 개의 골프장을 소유하는 데다가 다섯 개의 또 다른 골프장을 운영하는 중이지요. 그가 관여하는 골프장은 세상 최고수준이라고 합니다. 골프광 트럼프는 이미 열여덟 번이나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고도 하는데요. 저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지난 4년 동안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귀한 몸이시라, 그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꾸며줄 스텝이 많았습니다. 카메라 기사도 그에게 최대한 유리한 각도와 화질을 선택하고, 연설문도 최고수준의 작가가 달라붙어서 백방으로 도와주었지요. 분야마다 전문적인 보좌관이 따라붙어 있다는 사실은 두 말할 여지도 없고요.

그런데 골프계가 전하는 트럼프의 옛 모습은 민낯 그대로의 그 사람이지요. 한 인간으로서 그의 독특한 취향이라든가, 상상을 뛰어넘는 그의 횡포가 사실 그대로 중계됩니다. 물론 그렇다 해서 도널드 트럼프가 순전히 악마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골프에 대한 사랑이라든가 진실을 추구하는 마음이 왜, 하나도 없겠습니까.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트럼프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윤리적 결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늘어놓고 허풍떨기를 밥 먹듯 하는 사람이랍니다. 책의 제목을 《커맨더 인 치트》라고 한 것도 굉장한 유머일 것입니다. “커맨더 인 치프”여야할 사람이 “치트” 곧 희대의 사기꾼이라니 말입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백악관은 엉망일 것입니다. 이는 현대 미국 사회의 비극이자 현대세계의 재앙이겠지요.

조금 웃기는 이야기도 있지요. 캐디들의 증언에 따르면 트럼프는 골프공을 발로 차서 다음 샷을 날리기 쉬운 곳으로 보낸다는 것이죠. 트럼프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도 자잘한 속임수를 쓰고, 보지 않는 곳에서는 노골적으로 속임수를 쓴다는 거죠. 트럼프는 규칙도 예의도 전통도 몽땅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공은 벙커 안으로 집어 던지고, 자신의 스코어를 기록할 때는 샷의 숫자를 빼버린다는 것인데요. 정말 치사한 성격의 소유자랍니다.

그는 근거 없는 무용담으로 청중을 속이고, 골프장을 지을 때는 공사업자들에게 건네줄 건축비를 멋대로 떼먹는 사람이었지요. 혹시라도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도리어 그들을 협박하고, 여차하면 소송을 걸어 상대방을 겁주고 귀찮게 하는 악습의 소유자랍니다. 이런 악행이 하필 골프장에서만 연출될 이유가 있겠습니까.

3.

이 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줄을 그어놓은 몇 대목을 옮깁니다. 트럼프, 그의 민낯을 알면 알수록 세상이 걱정됩니다. 대의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인데요. 선거에서 믿을만한 후보를 골라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트럼프가 골프와 사랑에 빠진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모든 골프 라운드는 이길 수 있는 열여덟 번의 기회가 있다. 물론 같은 타수라면 플레이오프까지 더해 열아홉 번째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내가 당신을 꺾었어. 내가 이겼지. 당신은 패배자야. 골프에 대한 트럼프의 사랑은 그가 지금껏 만난 여성들과의 로맨스보다도, 경력보다도, 사교모임보다도 훨씬 오래 이어지고 있다.(54쪽)

- 한번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컨트리 가수인 내 친구가 LA에서 처음으로 트럼프와 골프를 친 적이 있었다. 거의 초반 홀에서 트럼프는 러프rough에 있던 공을 발로 차서 페어웨이로 보냈다. 이를 본 가수는 얼어붙었다. “잠깐만요! 그래서 오늘 이런 식으로 한다는 거죠, 도널드?” 그가 소리치자 트럼프는 설명했다. “오, 나와 함께 골프를 치는 모든 사람이 러프 밖으로 공을 던져요.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당신도 그래야만 하죠.” 그저 기록을 위해 남겨두자면, 50년 가까이 골프를 쳐왔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이는 딱 한 사람뿐이다. 바로 이 책 표지에 있는 그 사람(트럼프)이다.(75-76쪽)

- 2018년 7월 트럼프가 영국 제도를 방문하기 전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영국이 그의 방문을 앞두고 내보인 격앙된 반응에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대꾸했다. “나는 영국 사람들, 그러니까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아, 당신들이 알다시피 아일랜드에는 내 재산이 있죠. 어쨌든 그들은 나를 많이 좋아해요.” 한 가지 문제는 아일랜드가 영국에 속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영국에 속한 건 북아일랜드니까.(127쪽)

- 그는 그린 위로 카트를 몬다. 트럼프 베드민스터에서 그가 그렇게 하는 영상이 있다. 골프에서 이는 가장 불경스러운 짓이다. 그린 위로 카트를 모는 일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빨래를 너는 것과 같다.(150쪽)

- 그는 당신에게 조언을 해줄 것이다. “좀 더 밑에서부터 올려 쳐야 해요. 이렇게!” 당신은 그의 질문에 대답할 것이고, 가르침에 귀 기울일 것이고, 그대로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곧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185쪽)

4.

우리는 지난 몇 해 동안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지배하는지 지켜보았지요. 그는 김정은과 아주 친하다면서 하노이 회담을 깨뜨렸고,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 신사라고 치켜세우면서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의 방위비를 요구했지요.

시진핑과도 ‘베스트 프렌드’라고 우기면서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최고의 우정을 과시하면서 뒤통수를 치곤 하였습니다. 트럼프의 정치는 상스럽기 짝이 없지요. 우방과의 정치적 신의라든가 국가 간 약속의 효력 따위와는 거리가 무척 멉니다.

때로는 그런 터무니 없음이 의외의 ‘반짝 쇼’ 또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지요. 이 책을 읽으며 저는 다시 한번 생각했어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요. 골프장의 트럼프와 백악관의 트럼프는 결국 한 사람인 거지요.

이런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수밖에 없는 미국이라면, 그들 나름의 피치 못할 딱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떨치기 어렵습니다만, 운명의 여신도 결국 이 사람을 버린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아직도 자신의 대선 패배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못하는 모양 같습니다.

그가 자리에 연연해 하더라도, 그러나 역사는 이미 그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구겨질대로 구겨진 사기꾼의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가 백악관을 떠나지 않으려 발버둥칠수록 더욱더 우스꽝스럽게 일이 돌아가고 말 터인데요. 그가 쫓겨나간 뒤까지도 제가 소개한 이 책은 가치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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