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기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 '페인트'

면접을 보고 부모를 선택한다면, 당신은 어떤 부모를 선택하겠습니까? 당돌한 질문이다. 그런데 이 당돌한 질문이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부모를 아이들이 선택한다?’ 언뜻 보면 무슨 말? 하고 궁금해 하겠지만 소설 <페인트>(이희영/창비) 속에선 일어나고 있다.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발상이 참신하면서도 시의적절한 주제이기도 하다. 소설이란 전제가 아니더라도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가지고 낳는 것을 기피하는 현 세태에 대해 일종의 질문을 던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나서 이 소설 속 아이들 또래인 14~16세의 청소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다.

만약 너희가 부모를 선택한다면 어떤 부모를 선택하고 싶니?

“너희는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결혼한다면 아이를 가질 생각은 있니?”

이런 질문에 대부분 결혼 생각은 있다는 답이 많이 나올 줄 알았다. 헌데 답은 의외였다. 열 명 중 두세 명 정도만 결혼 생각이 있다고 한다. 그 두세 명도 결혼은 하지만 아이는 고민해보겠다는 답이다. 그 이유를 물으니 요즘 이삼십 대 청년들이 하는 걱정을 10대의 청소년들이 그대로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취업 걱정, 집 걱정을 하고 있었다. 늘 떠들고 장난만 치는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 머릿속에는 미래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방송 신문 매체에서 늘 듣는 소리에 아이들은 세뇌된 듯 아직 하지 안 해도 될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또 다른 질문을 해봤다.

“만약 너희가 부모를 선택한다면 어떤 부모를 선택하고 싶니?”

이에 대한 의견은 단순하면서도 간단했다. ‘숨 좀 쉬게 하는 부모 만나고 싶다’ ‘지금보다 부드럽게 대하는 사람 만나고 싶다’ ‘지금도 좋은데 간섭을 조금 덜 하는 사람 만나고 싶다’ ‘관심을 조금만 가진 부모를 선택하겠다’ ‘경제적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등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고민하는 것들을 반영하는 답이 많이 나왔다. 이런 생각들은 실제 소설 속의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데 많이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설 <페인트>는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국가는 부모가 없는, 부모가 있어도 키울 수 없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공부할 수 있는 ‘양육공동체’를 만든다. NC 센터다. 이곳은 말 그대로 가정에서 키우지 못하는 아이들은 모두 국가에서 키우겠다는 발상에서 만든 곳이다. NC는 국가의 아이들이란 의미이다. 출산을 했는데 키우기 싫거나 어려우면 모두 국가에서 양육하는 NC세터로 보낼 수 있다. 최첨단 시설로 이루어진 NC 센터는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에 들어온 아이들은 국가의 아이들로 자라난다. 열아홉 살 때까지. 스무 살이 되면 아이들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하여 NC 센터를 떠나려 한다. NC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차별받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NC 센터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이름 대신 숫자로 명명된다. 센터의 아이들은 영어의 열두 달 중 들어온 달에 따라 노아, 아키, 제누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고 숫자가 붙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제누301도 1월에 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이 진짜 이름을 갖기 위해선 부모가 될 사람을 만나 가족을 이루거나 스무 살이 되어 센터를 떠날 때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흥미는 부모 선택권이 아이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센터 안의 아이들은 홀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이 어떤 부모인가를 그럴듯하게 포장을 한 어른들을 직접 만나 면접을 본다. 아이들은 그것을 페인트라고 말한다.

‘페인트’는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뜻하는 소설 속 아이들의 은어이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입양할 경우 부모가 될 사람들이 아이를 보고 선택한다. 아이는 선택되는 존재이지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소설 페인트는 정 반대이다.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닌 열세 살 이상의 아이들에게 부모 면접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열세 살이면 싫은 것과 잘못된 것을 판단하고 말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서 이다. 그리고 정부에서 주는 혜택만 노리고 무분별하게 부모 면접을 신청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아무나 나이가 되면 면접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와 부모들을 연결시켜주고 아이들을 돌보며 교육하는 가디들의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을 통과한 부모들은 페인트를 할 아이의 성향을 고려하여 선택되고 3차에 걸쳐 그 부모는 아이에게 면접을 받게 된다. 그렇게 면접을 받은 사람들에게 아이들은 점수를 주게 되고 아이에게 선택 받은 사람은 아이의 부모가 되어 한 가족을 이루게 된다.

아이들에게 선택받은 이들에겐 국가에서 양육 수당을 받고 연금을 앞당겨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얻게 된다. 물론 아이를 입양한 후 오 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키워야 하고, 이후에도 오 년 주기로 문제가 없는지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을 입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요소다. 그래서 페인트를 받을 부모들은 온갖 모습으로 자신을 꾸민다.

“페인트, 즉 부모 면접을 보기 위해 센터에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우리는 너희를 정말 사랑한단다. 좋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 있고 최고의 가정을 선물하려고 한다.”

“손 많이 안 가는 성격, 얌전하고 착한 아이 하나 데려다가 어서 정부지원금을 받고, 결혼도 빨리 시켜서 연금도 안정적으로 타 먹고 싶어.”

태어나서 부모란 걸 가져보지 못하고 바깥세상을 경험하지 못해 본 아이들에게 새로운 부모를 만난다는 건 환상일 수 있다. 세 번의 만남과 한 달간의 합숙을 통해 부모를 만나 부모를 선택하지만 그곳에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정이 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가족이 되었기에 이해와 배려가 없이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만일 내가 자식들에게 부모 면접을 본다면 몇 점이나 맞을까?

남녀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 그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깨져버린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환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센터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지만 어쩌면 그 부모에 대한 환상 또한 얼마가지 않아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갈등 또한 일어날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깨짐을 알기에 센터의 가디들은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데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두 사물이 부딪히면 마찰이 생긴다. 강하게 부딪힐수록 그 마찰의 강도는 세지고 나중엔 불꽃까지 튈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 맞지 않은 생각,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 서로 다른 행동들이 마찰, 즉 갈등을 일으킨다. 그것이 심해지다 보면 사람과 사람,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일지라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페인트>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한다. 특히 십대의 청소년들에게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고 부모는 정말 필요한 존재인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어떤 가족이 필요한 것인지.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이고 좋은 가정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것을 작가는 바깥세상과는 격리된 국가 양육 공동체 ‘NC 센터’라는 공간에서 자라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생각과 심리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들이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기가 어려운 사회이다. 그래서 결혼을 거부하고 아니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설령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아이를 잘 낳지 않으려 하는 사회, 아이를 낳더라도 점차 키우지 않으려는 사회로 가고 있다. 해서 조금은 엉뚱한 자문을 해본다. 만일 내가 자식들에게 부모 면접을 본다면 몇 점이나 맞을까. 아이들은 내게 몇 점의 점수를 줄까. 그리고 모든 부모들에게 ‘당신은 지금부터 당신의 자식들에게 부모 면접을 받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김현(<사람과 언론> 제6호(201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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