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의학서적의 문제는 좋은 책이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안아키 사태 이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다.

고혈압, 당뇨병, 암 등 흔한 병에 관해서도 일반 독자가 믿고 읽을 만한 책이 그리 많지 않다. 일단 절반 정도는 쓰레기다.

당뇨라면 밥 먹지 마라, 탄수화물 끊어라, 약 먹지 마라 같은 책들이다. 번역서라도 괜찮은 걸 골라 오면 좋을 텐데, 옥석을 가릴 능력들이 없으니 인기를 끄는 사이비 과학책이 먼저 들어온다. 특히 일본책 번역서는 정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교수들이 쓰는 책은 내용이 좋은 것들이 있다. 이 책들의 문제는 글이 탄탄하지 않고, 구성에 짜임새가 없으며, 도표와 그림을 적절히 활용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대중과 소통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하긴 올해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겪으며 이제 누구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소통의 기술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소통할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오해받지 않았을 것이다. 의사의 비극이요, 국민의 비극이다.

서양 같으면 하버드, 존스홉킨스, 메이요 등 유명 센터에서 총서 형태로 건강서를 낸다. 그 정도 규모가 안 돼도 교수들이 의학서를 내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그래서 아는 교수들을 찾아 다녔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가장 큰 이유는 괜히 욕 먹기 싫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의료가 심하게 왜곡되어 있어 정석대로 진료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렇다고 책을 쓰면서 편법을 쓸 수는 없다.

정석을 쓰자니 현실과 너무 어긋난다. 그런 책을 함부로 냈다간 이런저런 일로 항시 얼굴을 마주하는 다른 교수들에게 원망을 듣기 십상이다. 나만 해도 2000년대 초반에 개원의 모임에서 '주사를 주는 건 이익을 위해 아동을 학대하는 행위'라고 선배 의사들에게 대들었다가 뺨을 맞은 경험이 있다. 개원의야 그럴 수 있지만 교수 사회에서 그렇게 중뿔난 짓거리를 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몇 군데 대학에 건강총서를 내자는 제의도 했다. 이미 그런 시도를 하는 곳에는 내가 에디터로 참여할 수 있다는 의향도 전달했다. 별 관심들이 없었다. 총서는 계속 나온다. 들여다 보면 한숨이 난다. 이걸 일반 독자들이 읽으라는 건지, 그냥 이런 일도 한다고 자위하려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조홍근 선생님 같은 셀럽이 나를 만나준 것도 뜻밖이었지만, 출간 제의를 사심 없이 받아주신 것도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삐뽀삐뽀 119>를 보면서 의학 대중서가 나아갈 길을 고민했었다.

"의료가 특수하게 왜곡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진료 경험이 풍부하고, 항상 공부하는 사람이 책을 써야 한다.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저자가 활력이 떨어지면 후배들이 뒤를 이어야 한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말씀드렸고 초석을 놓아주십사 부탁했다. 조 선생님의 컨텐츠는 방대했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흔쾌히 수락해주신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책을 내기 위해 부지런히 절차탁마했다. 필요한 부분은 직접 글을 써서 잇기도 했다. 최종 원고를 보신 조 선생님께 "에디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 알았습니다."란 평을 들었을 때 뛸듯이 기뻤다.

이제 원칙을 지키며, 읽기 쉽고, 최신 의학의 발전을 망라하며, 독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대중의학서의 첫 책을 내놓는다. 독자들께는 호응과 질정을, 강호의 숨은 저자들께는 동참을 바란다.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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