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안중근 의사는 날마다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독서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달았고, 세상의 흐름을 읽었으며, 뜻 있는 사람으로서 나아갈 바를 자각했다. 이 때문에 그는 한 나라의 고관이 아니었으나,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걸머질 대단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처럼 원대한 뜻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설사 잠시 비분강개한 마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애국심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책이 사람을 만드는 법이다.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도 매일 글을 읽고, 쓰며, 자신의 마음을 갈고닦았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동양평화론’이라는 미완의 글을 집필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책을 다 쓰기 전에 형장으로 끌려 나갔기 때문에 그의 귀한 원고가 완성되지는 못했다.

남아 있는 약간의 글만 보아도, 안중근 의사의 뜻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한국, 일본, 중국을 하나의 연방으로 만들어 열강의 침략에 대항하는 한편, 동양 삼국이 서로 평화를 보장하며 공동 번영의 길에 접어들기를 염원했다. 그리하여 동양의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원대한 계획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치밀하게 구상했다.

범인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토 히로부미를 증오할 수는 있었겠으나 사살하는 데 이르지 못했을 것이요, 운 좋게 그를 죽일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일제의 모진 고문과 회유책에 의해 처음 뜻을 버리고야 말았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를 전향시키기 위해 일제가 얼마나 간교한 꾀를 냈을지는 굳이 그 내막을 알아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일제가 얼마나 혹독하게 안중근 의사를 으르고 고문했을지도 빤한 일이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 사람의 젊은 청년에 불과했으나, 심지의 굳기가 강철을 무색하게 했다. 이것은 결코 인간의 물리적 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평소의 독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충실하게 연마해온 결과 저절로 얻어진 정신의 힘이었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의 많은 선비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충성스러운 마음을 잃지 않았다. 설사 형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더라도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으로 자백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간교한 꾀로 회유를 당하더라도 초지일관하여 죽음을 기꺼이 맞았다. 바로 이러한 불요불굴의 혼을 선비의 넋이라고 다들 기렸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폭력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안중근 의사와 같이 신념을 위해, 나라를 위해 뜻을 꺾지 않는 인사들이 많았다.

멀리는 청나라에 붙잡혀가서도 저들의 황제 앞에서 고개를 굽히지 않고 죽음을 감수한 이른바 ‘삼학사’가 있었다. 더 가까이는 일제의 모진 취조를 받으면서도 한 마디의 거짓말도 하지 않은 것으로 이름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있었다. 이 모든 분들이 실은 다 안중근 의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이름은 달랐으나, 뜻은 하나였다.

그들이 그렇게 온전한 마음으로 굽힘이 없는 길을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책의 힘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도 외부의 물리적인 힘으로서는 굽힐 수가 없는 법이다.

이야기가 너무 비장해진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독서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성서를 읽고, 그것을 진리로 수용했기에 순교도 할 수 있고, 전교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예는 인류의 역사 속에 그야말로 부지기수였다.

내가 말하는 책이란 오락을 위한 서적이 아니요, 요리나 가사를 위한 실용의 서적도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처세의 책도 아니고, 일상의 필요를 위한 기술서적도 아니다.

본디 약하기만 하고, 내버려두면 게으르고 탐욕에 흐르기 쉬운 인간을 강철보다 강하게 단련하는 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절박한 현실적 요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책들이다. 그것을 이름 하여 인문서적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간의 도리를 설명하고, 삶의 목적을 말하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온 내력을 기록한 책들인 것이다.

오늘날의 용어를 빌린다면,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책들이다. 독자 여러분이 대개는 다 아는 바라서, 길게 부연하지는 않겠다. 요컨대 안중근 의사의 내면을 강철로 만든 것은, 요즘 말로 역사와 문학과 철학에 관한 책들이었다.

※출처: 백승종, <선비와 함께 춤을>(사우, 2018)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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