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칼럼

정확하게 작년 오늘(2019. 10. 05)에 쓴 글입니다. 제 소신은 그대로입니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한 조각 추억을 담아서 다시 올립니다.
1.
지난 개천절이었지요(2019. 10. 3). 광화문 네거리와 세종로를 인파가 가득 채웠습니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타도를 힘차게 외쳤습니다. 일부 시위군중은 각목을 휘두르며 경찰 제지선을 넘어 청와대로 쳐들어가 물리적으로 의지를 관철하려고까지 했습니다.
시위대의 고성과 난동에 가까운 흥분상태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것은 야권 인사 및 기독교 계열의 지도자들이었지요. 그들로서야 대단히 흡족한 하루였을 것입니다.
진보의 두뇌를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개천절 광화문 집회에 놀란 나머지 평소와 다른 견해를 밝힌 분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로서는 이날 시위에 젊잖고 교양 있어보이는 시민들이 다수 참여하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에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혹자는 이 기회를 빌려 문재인 정권의 약점을 공격했습니다. 집권이래 중산층의 요구를 무시했기 때문에 민심의 이반이 심각하다느니, 정권의 무능과 태만 그리고 공감능력 부재가 이런 사태를 낳았다며 비판했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겠지만 초점이 빗나간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권에게는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2016년 겨울부터 그 이듬해 봄까지 엄동설한을 견딘 촛불의 힘으로 태어난 정권이라서 기대가 높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촛불 혁명 당시 국내외 여론은 한국의 촛불시민혁명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죽했으면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촛불시민에게 인권상(2017년)을 주어, 그 노고를 기렸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촛불시민혁명의 결실을 정치적으로 수렴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거대 야당의 존재에서 비롯됩니다. 대통령은 바뀌었으나, 국회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소야대의 형편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집권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의석이 123석(41%)에 그치고 있는데, 자한당(110석, 37%)과 바미당(28석, 9.4%), 정의당(6석, 2.0%), 민평당(4석, 1.3%)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한당과 바미당이 반대하면(46.4%), 국회에서 집권여당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부분입니다. 드릴 말씀은 않으나 참고 넘어갑니다. 오늘날 국회의 문제점은 아래의 "2"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청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이겠습니까?
한 가지 가능성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것은 조기 총선거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없으므로, 그런 일은 꿈도 꿀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집권 초기부터 문재인 정부는 시민들이 바라는 개혁을 전혀 못한 채 거대 야당과 끝없는 줄다리기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2.
촛불시민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를 만들려면 반드시 개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대의정치의 한계를 반드시 돌파해야합니다. 사실 이것은 세계 주요 국가들이 안고 있는 공통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세계 어디서나 재벌들이 주요 정당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명한 사회학자들은 '공위의 시대', 즉 자본에 의해 정치권력이 잠식된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돈 선거’ 때문입니다. 조금 설명을 붙여봅니다. 현행 선거제도는 유명한 사람이라야 당선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지역구가 넓고 유권자도 수만 명이나 되기 때문이지요.
후보자가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려면 선거자금을 듬뿍 뿌려야합니다. 결국 누군가 후보자에게 목돈을 줘야만 당선권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작용합니다. 스펙이 여간 좋지 않으면 당선 가능성이 사실상 없습니다. 학벌도 좋고 인맥도 화려한 엘리트라야 정치가로 입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참담한 우리의 현실을 낳았습니다. 달리 아쉬울 것이전혀 없는 소수의 엘리트가 이 사회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자한당을 비롯한 주요 야당의 대표적인 인사들이 그 전형입니다.
우리사회에서는 누구나 양극화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우리의 양극화는 세계 최악의 수준이니까요. 그러나 이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못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수저론이 기승을 부립니다.
소수 기득권층이 모든 물적, 인적 자본을 독점하는 형국입니다. 그들은 행정뿐만 아니라, 입법, 사법 및 산업 전반의 권력을 양 손에 거머쥐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인데요. 이 나라를 사회적 약자의 존엄이 보장되는 나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꿈속에서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선거법의 개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자유한국당(자한당)과 바른미래당(바미당)을 달래지 못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자한당과 바미당은 자신들에게 불리할 지도 모르는 선거법 개정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리가 만무하다고 봅니다.
3.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것이 이나라의 상황입니다. 한 마디로 사면초가의 상황입니다. 저처럼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보면 그러합니다. 재벌과 엘리트의 입장에서 보면 물론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형편을 말하겠습니다. 가급적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검찰개혁이 한국사회를 바꾸는 개혁작업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날밤을 새워 이야기 해도 부족하겠으나, 여기서는 네 가지만 간단히 예로 들겠습니다.
첫째, 검찰은 재벌의 독점적 이익을 옹호하는 핵심세력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진리를 아실 것입니다. 모든 사안이 결국은 법원에서 판결로 결정되는데 그 기준이 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나라에서 일체의 사건은 기소권이 검찰에게만 있습니다. 그들이 눈을 감아주면 천하의 몹쓸 도둑도 안전지대에 있어요. 반면에 그들 검찰이 문제 삼으면 누구라도 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고위 검찰 출신의 변호사들이 예우를 받으며 법정에 나아가,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시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둘째, 검찰은 언론과 한 통속이 되어 한국사회를 들었다 놓았다 자기네 마음대로 흔들어댑니다. 이번에 어느 장관의 임명 사태에서도 똑똑히 보았습니다.
국회에서 청문회가 진행되자 그 장관 후보자의 배우자를 검찰이 기소했습니다. 그가 자신들의 상관으로 임명되기가 무섭게 검찰은 압수영장을 무려 70개나 발부 받아, 장관일가에 대한 마녀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일 동안 검찰은 모든 매체를 쥐락펴락하는 신공을 보였습니다. 이른바 좌파 성향의 언론마저도 그들의 시녀처럼 움직였습니다.
도대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검찰을 상대로 싸우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셋째, 한국의 검찰은 그 조직 구성이나 운영방식이 큰 문제입니다. 너무도 비민주적입니다. 최근 양심적인 몇몇 내부고발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말하기도 두려울 정도입니다.
검찰은 내적으로는 상명하복의 원칙이 극히 엄한 조직입니다. 일부에서는 '깡패조직'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독재 정권 아래서 뼈대가 굵은 조직이라서 그런지, 검찰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멉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검찰조직은 과거 한국사회의 칠흑같은 어둠과 부조리의 늪에 빠져 있는 듯합니다.
넷째, 검찰은 기득권 세력의 가장 든든한 보루입니다. 사회 곳곳에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지마는, 검찰처럼 심한 집단이 없습니다.
현재 국회의원의 면면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검찰 출신의 여러 의원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가장 수구적인 세력입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특권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한때 신문지상을 요란하게 만들었던 제주도의 검사장이 생각납니다. 그는 대로변에서 태연히 자위행위를 벌여 시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건마는 그는 지금도 멀쩡하게 변호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검사는 우리사회의 영원한 특권층이란 말입니까.
검사 조직 내부에서 이름이라도 조금 얻은 인사라면 손쉽게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의원도 되고 장차관에 국무총리까지 됩니다. 그래 가지고서 세상을 자기네 마음대로 요리합니다.
그런 점에서, 검찰 조직 및 그에 속했던 인사들이 한국사회의 개혁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일치단결하여 자기네 특권이 손상되는 일이라면 쌍수를 들고 반대합니다. 우리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수구적 태도입니다.
거꾸로 봅시다. 상황이 이처럼 비극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검찰 개혁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검찰조직문화의 혁신이 없이는 우리사회를 더 이상 민주적으로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4.
오늘도 많은 시민들이 서초동의 검찰 청사 앞에 모입니다. 시민들은 검찰 개혁을 힘차게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시민의 요구가 수비게 받아들여질지 확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70년 동안 특권을 누려온 최강의 권력자들이 보잘 것 없는 민주시민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습니다.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못해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변화란 늘 무망한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절망이 곧 성공의 시작일 때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검찰이 민주적으로 완전히 개혁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절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눈에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큰 꿈이 곧 우리의 현실로 바뀔 것입니다.
물만 가득 담긴 큰 독에서 향기로운 포도주가 끝없이 우러났던 2천 년 전 유대 땅의 어느 결혼식 풍경이 생각납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