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칼럼

1.

10월 3일은 동독과 서독이 하나의 독일로 새출발한 지가 3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독일 현지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도 그렇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그렇고, 다들 통일의 부작용에 관하여 솔직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재통일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부작용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거지요.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2.

이건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 이제 독일인들은 어두운 과거도 숨기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으로 보고 싶어요. 거시 지표상으로만 보면 재통일의 혼란은 대부분 극복되었고, 현재의 독일은 유럽 굴지의 최강국이지요. 통일 전에는 프랑스나 영국과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았으나 지금은 유럽연합(EU)의 독보적인 맹주가 바로 독일 아니겠습니까.

독일 재통일 이후 전광석화처럼 단행된 유럽연합의 화폐 단일화 즉 유로존 형성이 독일의 경제 재건에 엄청난 활력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연성화폐를 사용하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은 경성 화폐인 유로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채 몰락의 길을 갔고요. 계속해서 파운드를 사용하며 어정쩡하게 미국과 한편이 되기를 원했던 영국의 운명은 초라함이라는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구겨지고 말았지요.

큰 틀에서 보면, 독일은 통독 이후 여러 방면에서 약 20년 동안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었어요. 하지만 그 뒤에는 이러한 역사적 충격을 이겨내고, 다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어요.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독일은 사상 초유의 초강대국가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지요.

그 중심에 동독 출신의 여성 정치가 앙겔라 메르켈이 있어요. 메르켈은 실용주의와 합리주의의 화신과도 같습니다. 정치가로서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연출하며 기염을 토했지요. 놀라운 일입니다.

3.

그런데 아시는 대로 독일 내부의 사정은 간단하지 않아요. 통독과 더불어 과거 동독 지역에서는 엄청난 실업자가 발생하였지요. 또, 서독 지역과의 경제적 격차는 물론이고 정치적인 차별도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고질적이고 끈질깁니다. 구 동독의 일부 지역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잘 적응했으나, 대부분의 지역은 그렇지 못해요. 시민들의 불만과 원성이 해마다 차곡차곡 쌓여서 근년에는 구 동독지역이 '네오나치'의 소굴이 되다시피합니다. 아시는 그대로 입니다.

독일 내부의 화합과 연대, 나아가 협력과 일치는 앞으로도 상당기간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도 요원한 꿈으로 남을 것입니다. 재통일의 상처가 적어도 1천만 이상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제 30주년 기념식에서 슈타인 마이어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러한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어요.

4.

그래도 독일은 정말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메리켈 총리가 구 동독 출신으로 이렇다할 배경도 없이 자수성가한 것만 해도 그렇지요. 독일이 아니라면 이러한 개인적 성취가 아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독일의 시민사회는 유연하고 개방적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 독일에서조차 통일의 후유증이 구조적인 성격을 띤 것이고, 넘어서기 어려운 산맥과도 같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까요. 우리가 언젠가 재통일을 이룬다 해도 현재의 독일보다 더 능숙하게 통일에서 비롯된 모든 문제를 단시일 내에 멋지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5.

백승종 교수
백승종 교수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더 잘 할 수도 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허나 그렇게 되려면 준비해야할 것이 적지 않아보입니다. 통일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의 전반에 걸쳐서 우리가 지금 안고 있는 구조적 부조리와 폐단을 뜯어고쳐야 할 것입니다.

먼저 그런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우리에게 크게 부족한 외교, 군사적인 능력까지도 개선하여야겠지요. 그런 다음에야 평화통일도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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