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대로 좋은가?-정미정(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전북대 강사)

정미정 박사
정미정 박사

관행을 단죄하다.

“한 번도 적용된 적 없는 조항으로 피고인을 처벌하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경각심 없이 행사돼왔던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이 더는 허용돼선 안된다는 선언입니다.”

2018년 12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오연수판사는 방송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정현의원에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실 비서관으로 재직하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방송법 제 4조2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해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오판사는 이 의원의 행위를 ‘국가권력에 의한 언론간섭’으로 방송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오판사는 “홍보수석의 요구는 보도국장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통령의 의사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해당조항이 만들어진지 상당기간이 지나도록 기소와 처벌이 전무했던 이유는 이 조항을 위반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국가권력이 언제든지 쉽게 방송관계자와 접촉해 방송편성에 영향을 미쳐왔음에도 이를 관행 정도로 치부한 왜곡된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지극히 상식적인 법원의 판결이 놀랍게 여겨졌던 것은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잘못된 현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관행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14년 당시 이정현 전 의원의 전화를 받았던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의 KBS 인사개입과 보도외압 의혹을 폭로하며 보도국장에서 사퇴했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당시 길환영 KBS 사장이 김 전 국장에게 사표제출을 요구했다는 폭로는 한국 공영방송의 취약한 정치적 독립성을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이후 KBS는 양대 노조 파업 국면으로 이어졌고 길환영 전 사장은 해임됐다. 김 전 국장은 “청와대의 보도 통제 배경은 대통령이 KBS 사장을 일방적으로 선임할 수 있는 비정상 구조에 있다”며 “KBS 사장 선임 구조를 이제는 정말 바꿔야 한다. 이번 정부가 사장 선임에 직접 개입하진 않았겠지만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지 않으면 권력이 KBS 사장의 목덜미를 틀어쥐려는 현상은 막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권력의 무능과 부패, 국민에 대한 생명안전 보장의 실패, 블랙리스트로 대변되는 자유의 억압, 정치권력과 자본의 결탁으로 혼탁해진 시장은 이를 감시하고 폭로하는 대신 오히려 권력의 한 축으로 침묵하고 협력하는 쪽을 택한 다수의 언론 미디어에 의해 방기되었다. 발생했던 모든 불행한 사태는 미디어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드디어’ 부패한 권력자를 끌어내린 이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그것은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을 다시 돌려놓는 것. 그것은 권력과 자본의 편이 아닌,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강력한 공영방송의 존재이며 그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최우선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그렇지만 기대는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련 법률 개정안 18개나 상정

현재 국회에 제출된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된 개정안은 총 18개가 상정되어 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치환경에 영향받지 않는 지배구조 확립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박홍근안, 추혜선안, 이재정안, 방통위안의 4개 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되었으며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박홍근안을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안을 검토하자는 입장이라고 알려졌다.

2016년 발의된 박홍근 의원안은 KBS, MBC, EBS의 이사를 13명으로 증원하고 이사선임에 대한 국회 추천과 여야 이사추천비율(7:6)을 명문화할 것과 사장선임에 대한 특별다수제를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추혜선 의원안은 공영방송 이사추천 국민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사를 선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재정 의원안은 이사선임시 소속 구성원, 관련 학계추천이 3분의 1이상 되도록 하고 사장 선임시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장추천위원회를 만드는 내용이다. 방통위에서 제출한 안은 공영방송이사의 3분의 1 또는 일정 수 이상의 이사를 국민 의견수렴으로 추천받고, 국회가 아닌 방통위 상임위원 합의에 의한 이사 추천, 사장 선임시 국민의견 수렴 의무화를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현재까지 제출된 개정안들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에 부합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현재 제출된 개정안들은 모두 공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첫 번째, 우리는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나 범위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개정안의 주체들이 바라보는 공영방송은 모두 다르다.

우리 법에는 공영방송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어있지 않다?

현재 우리 법에는 공영방송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어있지 않다. 방송법 4장의 43조에 KBS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그 공적책임에 대해 서술되어 있지만, 공영방송의 개념이나 범주에 대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외에 공직선거법 8조의 7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조항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설치하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및 특별시·광역시·도·특별자치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설치하는 시·도 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위원을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과 공영방송사(한국방송공사와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따른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를 말한다)가 추천하는 각 1명.....”이라고 규정되어있다.

공영방송사를 KBS와 MBC로 규정하고 있으며, 우리는 여기에 수신료를 대략 3% 수준으로 지급받는 EBS를 포함하여 KBS, MBC, EBS를 공영방송으로 ‘취급’해왔다. 이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20대 국회에서 제출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주요 개정안을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KBS, MBC, EBS를 모두 포괄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박홍근의원안과 추혜선의원안은 세 방송사에 대한 이사회 구성과 의결방식, 사장임명에 대해 각각 별도의 법안을 통한 유사한 안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강효상의원안은 KBS의 지배구조에 대한 내용이고, 이재정의원안은 KBS, MBC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내용으로 EBS에 대한 의견은 없다. 방통위 의견서에서는 공영방송을 특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는 각 주체들이 공영방송에 대한 법적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방안만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법으로는 공영방송에 대한 규정이 없을뿐더러 세 방송사의 지배구조가 모두 제각각인 이사회와 사장선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난 1월 김성수의원은 방송법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안은 법체계의 전반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방송관련법을 통합하여 정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공영방송사를 KBS, MBC, EBS로 정의하고, 공영방송사의 공적책임을 새롭게 규정하는 안을 내놓았다. 워낙 포괄적이고 방대한 논의이다 보니 의견을 모으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개정안이 논쟁적인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논의를 촉발하고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공영방송에 대한 규정과 공적책무에 대한 명시, 이를 통한 규제의 문제 등이 일단 정리된 후에 지배구조의 세세한 부분이 정리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일 것이다.

공영방송에 정치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방안 여전히 불투명, 왜?

두 번째, 다소간의 논의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의 실현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현재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개선은, 적어도 시민사회영역에서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목표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추천에 대한 국회의 전면배제 의견이 제출되고 있다.

그렇지만 제출된 안 중에서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박홍근 안은 그동안 관행으로 이루어져 온 여당과 야당의 이사 추천 할당비율을 7:6으로 명시하여 입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의 비정상적이며 정치개입으로 지적되었던 관행을 입법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견서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사를 추천하는 현행방식을 유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방통위가 위원을 선임하는 국회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상황에서 방통위가 국회와는 독립적인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지 (가칭)국민추천이사제를 도입하여 이사 정원의 1/3이상을 국민의견을 수렴하여 위원 전원 합의로 선임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방통위가 밝혔듯이 “정파적 갈등을 완화”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그리고 어떻게 구성이 되든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성이 여당이 다수를 점하는 현재의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강효상 안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시 방통위나 국회가 아닌 시도지사협의회와 대한변협, 신문협회, 기자협회 등의 단체 추천을 받도록 하고 있다. 발의당시 신문협회가 추천한 인사가 포함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정치권이 아닌 단체의 추천에 이사추천을 맡기는 이 방식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논의에서 제외할 것을 여야간사협의에 요청했다.

이재정 안은 사장임명을 위해 국민대표성을 고려하여 100명 이상의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있어 정치개입의 차단이라는 목표에 어느 정도 부합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사회의 구성이 여전히 방통위 추천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금과 유사한 이사회 구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 방송사와 방송사 구성원 및 방송학계 추천이 1/3이상이 되도록 추천한다는 일종의 ‘중립지대’ 조건이 있다. 이사회보다 사장의 선임과정에 국민참여를 특히 강조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추혜선 안의 경우가 그나마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안이라고 보여지는데, 지역, 성별, 연령을 고려하여 균형있게 위촉한 200명의 이사추천국민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모를 통해 지원받은 이사 후보자들에 대해 공개면접을 실시하고, 투표를 통해 다득표 순으로 이사를 선정하여 방통위에 추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결국 관행을 입법화할 것인가?

2018년. 이 모든 논의가 진행되고 있던 와중에 공영방송의 이사진이 새롭게 선임되었다. 이사 후보의 신상을 공개하고 시민의견 수렴절차가 마련되기도 했지만 그간 이루어져 온 공영방송 이사 선임의 정치권 개입은 차단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이사들의 선임에 정치권의 노골적인 개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여기에 임하는 각 주체들의 목적은 모두 다른 것이 분명하다. 제출된 안에 대한 정당들의 논의진행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영방송의 이사진을 추천하는 권한을 국회에 주며, 그 할당비율을 여당과 야당이 나누어 갖는 것은 공영방송에 그 만큼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여당도, 야당도, 그 어떠한 정치정당의 개입도 배제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결국 문제는 또 국회다. 어떤 개정안이 나와도 그 법안을 통과시킬 권한은 국회에 있다. 각 정치세력에게 유리하지 않은 제도개선을 할 의지가 있는가. 결정권이 그들에게 있다. 언론에 대한 통제와 장악의 유혹을 버리고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국회의 개입을 차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관행을 입법화할 것인가.


정미정 박사 : (현)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현)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위원, (현)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사, (전)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전)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 

/ 정미정 박사 /<사람과 언론> 제5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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