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전주한옥마을 '민원 해결사'의 일상 삶
“슝~~ 슈~웅”
지난 7월 전주시 한옥마을지원과로 발령 받은 필자가 출근을 위해 사무실이 있는 경기전(慶基殿) 앞에만 오면 어김 없이 들려오는 소리다.
출근 인파로 가득한 거리에서 들리는 낯선 소리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필자는 기간제 공무원을 관리하는 동료에게서 ‘송풍기’라는 청소도구를 가동할 때 나는 소리라는 걸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도로에 떨어진 쓰레기를 바람을 일으켜 길 옆 얕은 배수로에 모아두면 노면청소차가 빨아들여 청소를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늘 같은 시간에 한옥마을 태조로를 청소하곤 해 출근길 필자가 경기전 풍경의 일부처럼 여기게 된 이는 이자미원국(전주시 기간제 공무원, 62-이하 원국)씨다. 은행로에 설치된 실개천(아이들이 물놀이 등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된 작은 개울) 관리 담당인데 자청해서 매일 아침 태조로 등 경기전 주변 청소를 한다는 것이다.
경기전 주변 청소가 끝나면 전날 봐둔 한옥마을 내 시설관리에 나서는데 이 역시 맡은 업무가 아니며 자원해서 하는 일이다.
원국씨의 시설 관리는 시설의 운영주체를 따지지 않고 전날 살펴본 결과와 스스로의 기준으로 결정한다.
가령 추석 연휴를 앞둔 시기에는 벌초가 필요한 시설들(벌초계획이 있는 시설은 제외하고 여력이 없는 시설 위주로)을 일정을 잡아 매일매일 해나가는 식이다.
필자가 관리하는 한 시설도 벌초 계획이 없는데도 시설관리자가 벌초 요구를 해 내심 걱정을 하던 차 우연히 만난 원국씨가 내게 “주사님, 00시설 얘초기 돌려버렸어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게 아닌가? 원국씨의 일처리는 그런 식이다. 누가 시키거나 부탁하지 않아도 스스로 관광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처리하곤 한다.
원국씨의 그런 ‘오지랖(?)‘은 오랜 내력이 있어서 마을 주민들이 오며가며 들리곤 해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이발소 시절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주민들 누구라도 애로사항을 호소할라치면 득달같이 관공서를 쫓아다녀 기어코 해결해내곤 한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지금도 그를 “대장”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 그의 오지랖이 폐기 위기에 빠진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를 지켜내 오늘날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소원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명소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한옥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오목대 탐방로를 개설하던 2007년 이야기로 전주시 공식불로그에 전주한옥마을의 수호신 당산나무,란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전주시 해당 구청에서는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의 존재자체를 모르고 있던 차, 느티나무 바로 아랫집에서 나무로 인해 그늘이 지는 등 피해가 발생한다며 제거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민원인이 제거를 요구한 나무가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라는 것을 상상조차 못한 담당자는 현장 확인 없이 업체에 이의 제거를 지시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해당 업체가 주변 건물 피해 발생을 우려해 가지를 먼저 제거하려고 포크레인 삽으로 느티나무 줄기를 찍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우연히 이를 목격한 원주민이 중지를 요구했지만 해당 업체는 공문을 내 보이며 강행 하려하자 이 주민이 다급하게 원국씨에게 전화로 S.O.S를 요청하게 된 것이다.
전화를 받고 득달 같이 현장에 도착해 포크레인 삽에 한차례 찍힌 나무의 처참한 모습에 아연 실색한 원국씨는 일단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만류해놓고 구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 전주시 공무원들 사이에 이미 호가 난 호통을 치게 된다.
“당신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 줄 알기나 하냐? 이 나무를 제거하면 당신도 전주시 공무원에서 제거될 줄 알라”고 벼락같은 호통을 친 것이다.
그의 이 호통이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를 지켜 2015년 보호수로 지정되어 오늘날 많은 관광객들의 소원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한옥마을의 또 하나의 명소가 됐다.
한옥마을의 민원해결사 원국씨는 전주시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유명인사다. 한옥마을 주민들의 민원을 도맡아 해결하다보니 전주시 민원콜센터에는 “이 번호로 민원전화가 오면 담당 부서 연결 시 ‘신속하고 확실한 민원처리 바랍니다‘라는 안내 꼭 할 것“ 이라는 메모가 있을 정도며 이는 필수 업무 인수인계품목이 된지 오래라고 한다.
기간제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민원을 많이 내는 것으로 악명?)을 떨치는 원국씨지만 마을 내력을 소상히 아는 3대째 한옥마을 원주민인 원국씨는 시에 ’쌍샘 복원‘을 제안해 한옥마을의 또 다른 명소가 만들어 지고 있다.
쌍샘물을 먹으면 쌍둥이를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쌍샘마을 출신인 원국씨는 자신이 쌍둥이로 쌍샘복원을 제안해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시는 전주향교에서 벽화로 유명한 지만마을 가는 기슭에 위치한 쌍샘 마을(이 우물을 먹으면 쌍둥이를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실제 이 마을에는 원국씨를 포함해 11쌍의 쌍둥이가 있다고 한다)에 2022년까지 약 17억 원을 투자해 쌍샘을 복원하고 주변에 소규모 공연 공간과 관광객 체험 광장 등을 조성 중에 있다.
자신이 쌍둥이로 이 마을 출신인 원국씨가 쌍샘 복원을 제안한 것이다.
쌍샘 복원이 완료되면 우물을 통해 만남과 소통이 이뤄졌던 옛 생활풍습을 재현해 전통문화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어 한옥마을에 새로운 역사 문화 자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가장 한국적인 관광지로 세계적인 관광지인 전주한옥마을의 정체성 확립과 관광객들의 동선 확대로 국제관광거점도시 전주가 글로벌 문화관광도시의 면모를 갖추는데 큰 도움을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청소중에도 관광객들의 질문에 친절히 안내하는 원국씨는 늘 바쁘다. 원국씨의 이름 자미원국은 실제 풍수지리에 등장하는 용어로 형세 상 황제의 자리라 하여 전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황제가 머무는 자리를 말한다.
원래 이름이 '이평수'였던 원국씨는 어려운 형편으로 많이 배우지 못해 어렵기만한 자신의 생활이 자식대 까지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원국씨의 근로 시간은 1주에 40시간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 더 휴일근무를 한다. 휴일 근무를 포함해 6일 근무를 하고 온전히 쉴 수 있는 월요일에도 오후가 되면 예의 송풍기를 들고 한옥마을 여기저기를 누비는 원국씨다.
그런 원국씨가 가꾸고 싶은 한옥마을에 대해 물어봤다.
“한옥마을은 마을이잖아요?. 사람과 사람이 가슴으로 부대끼며 정을 나누던 그런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개발이 대세인 시대,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니 상업화는 필수불가결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옥마을은 전통문화지구로 옛것을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한 특별구역이니 한옥마을에서만큼은 마을의 본 모습을 지켜나가는 전통문화의 해방구 역할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대답이 지체 없이 돌아왔다.
한때 년 인원 1,300만 명을 정점으로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관갱객은 줄고 있다. 콘텐츠의 빈약과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지적도 있다. 국제관광도거점시 전주시로서는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적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온몸을 던져 한옥마을을 가꾸는 사람, 3대째 한옥마을을 지켜온 원주민 이자미원국씨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그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마을의 본 모습을 갖춘 진정한 한옥마을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
/서치식(전주시 한옥마을지원과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