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치료가 어려운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사회의 따뜻한 보살핌과 지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사회에서 어떤 질병을 이해하지 못해 환자들을 따돌리고 접촉을 꺼리는 경우 환자와 가족은 질병의 고통과 사회적 냉대를 동시에 견뎌야 한다.

암이나 말기 심부전을 앓고 있다면 누구나 그 처지를 딱하게 여기고 도와주려고 한다. 아이가 선천성 심장기형이나 백혈병에 걸린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지원도 적지 않다. 이런 물심양면의 지원이야말로 환자가 병과 싸우는 데 큰 힘이 된다.

그러나 조현병을 앓는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환자와 가족이 함께 사회적 낙인을 겪는다. 환자는 위험하고 사악하고 불쾌한 존재로서, 가족은 정신병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로서 멸시와 냉대를 피하기 어렵다.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는 말이 있지만 사정이 이러니 자랑은커녕 숨기기에 급급하다. 어디 가서 속 시원히 말도 못하고 냉가슴을 앓는다.

사회적 이해가 부족한 탓에 지원 역시 빈약하기 짝이 없다. 항상 모자란 보건예산은 제대로 된 치료를 제공하기에 역부족이다. 조현병은 재발과 악화를 반복한다. 아주 상태가 좋아져 정상과 다를 바 없게 보였다가도 아무런 이유 없이 다시 나빠진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가족은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정신적으로 탈진한다.

그러나 가족으로서 가장 힘든 일은 양질의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환자 자신은 어떻게 느낄까? 가족은 절망스럽지만 당사자는 행복할까?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증상이 심해져 이상한 목소리를 듣고, 당황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하면 옆에서 어떻게 해줘야 할까?

재발을 막고 조금이라도 정상에 가깝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속이 탈 정도로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고혈압이나 당뇨병에 관한 책은 넘쳐나도 정신질환에 관한 책은 드물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편견에 가득 찬 악플 수준의 글 외에 내실 있는 정보를 얻기 어렵다. 서로 터놓고 논의하지 않고 숨기려고만 하니 환우회 같은 모임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의사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의 특성상 환자에 맞는 개별적인 정보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환자와 가족을 교육하기란 매우 어렵다. 제한된 진료 시간 안에 약이나 치료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여 계속 치료를 받도록 하기만도 힘에 부친다. 의사 입장에서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 책은 미국의 유명한 지역사회 정신의학자인 레베카 울리스가 조현병과 주요정동장애 등 주요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가족을 위해 쓴 안내서이다. 가족들은 정신질환자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정신질환의 증상에 대해 설명한 1장부터 놀라움에 휩싸일 것이다. 당황스럽고 막막하며, 때로는 가증스럽기조차 한 환각, 망상 등의 증상을 환자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이런 증상을 겪을 때 어떤 상태인지,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알고 나면 깊은 동정과 연민이 솟아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정신질환의 자연적인 경과와 치료, 환각과 망상 등 기본적인 증상은 물론 자살, 폭력 등 보다 심각한 증상에 대처하는 법, 보호자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보람 있는 삶을 꾸려가는 법, 건강한 다른 가족과 조화를 이루는 법, 의사 및 의료기관과 치료를 위한 협동 관계를 맺는 법, 환자의 주거ㆍ직업ㆍ돈관리를 보살피는 법, 사회적 낙인에 대처하는 법 등을 차례로 읽는다면 답답하고 혼란스럽기만 했던 마음에 갈피가 잡히면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끝에는 정신질환과 물질남용 문제를 다루었는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큰 문제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 가지 한 가지가 가족 입장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래도 책 한 권을 통독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만만찮게 든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한시가 바쁜 상황에서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꼭 기억해야 할 사항을 ‘빠른 길잡이’이라는 소단락으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따로 목차를 붙인 빠른 길잡이는 어쩔 줄 모르는 혼돈의 순간에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저자는 미국인이므로 이 책의 모든 상황은 미국이 배경이다. 더욱이 이 책은 오래 전에 출간된 것이라 현재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 복간 과정에서 그 부분들을 빼야 할지 깊이 고려했다.

그러나 곳곳에서 현재 미국 정신보건 체계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우리 입장에서는 배울 점이 많고, 앞으로 타산지석으로 삼을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해서 되도록 전문을 옮겼다. 약물요법은 변한 것이 많아 부득이 삭제했고, 방대한 참고자료는 모두 영어인 데다 오래된 것들이라 생략했다.

 

옮기면서 무엇보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 대한 저자의 시각에 감동했다. 그는 환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항상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 뜻을 존중하여 되도록 ‘환자’라는 말을 쓰지 않고 옮기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조현병 또는 주요정동장애를 앓는 내 환자 중 많은 이들이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가운데 가장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환자와 가족들은 당연히 이렇게 존중받아야 한다. 또한 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보호자도 자신의 삶에 충실함으로써 작은 행복을 추구하라고 충고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조언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모쪼록 이 책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가족은 물론, 정신질환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020년 9월 옮긴이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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