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출판업은 사양산업이다. 더욱이 대표란 사람이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한국에 출판사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출판사에서 의뢰한 책을 번역해주고 받은 번역료까지 밀어 넣고도 모자라 개인 돈을 들여 근근이 꾸려갔다.

2018년 알마 출판사에서 자폐증의 역사에 대한 책 <뉴로트라이브>의 번역을 의뢰받았다. 자폐는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 같은 정신질환과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대부분 자신의 처지를 올바로 대변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짧지 않은 책을 옮기면서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수없이 무릎을 치고, 눈시울을 적셨다. 출간된 후에는 자폐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한국에 들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자폐인의 처지를 정확히 알고 공감을 잘 하느냐고 묻곤 했다. 그것이 어디 남의 일이었겠는가!

자식이 장애를 겪으면 부모는 죄책감과 후회로 수많은 밤을 지새운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일생을 샅샅이 뒤지며 자기검열을 한다. 아이는 저렇게 고통받는데 내가 기쁘거나 즐거워한다는 데 죄책감을 느껴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뭔가를 즐기거나 잘 웃지도 못한다.

나 또한 그런 세월을 고스란히 겪었다. 지금도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수많은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들은 왜 부모가 잘못해서 자식에게 정신질환이 생긴 것이 아니란 말을 한 마디도 해주지 않는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줘야 한다거나, 자식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 때로는 비난이나 의심의 비수가 되어 심장에 박힐 수 있음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자폐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몇 번을 강조해 말해주었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물론,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들도 울고, 나도 울었다.

열 번 넘게 대중강연을 하면서 의외로 내게 잘 맞는 일임을 깨달았다. 하기야 꼭 필요한 의학 지식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어디 책뿐이겠는가? 이듬해 김영사의 의뢰로 <면역항암제가 온다>를 번역하고 역시 한국에 들어가 강연을 하러 다녔다. 말기암으로 절박한 상태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몇몇 대학에서도 초청을 해주었다. 특히 깊은 학식과 인품으로 평소 존경해온 J선배의 초청이 반가웠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선배가 저녁에 누구를 함께 만나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절친한 사이인 치과 선생님 부부인데 내가 번역한 책을 통해 나를 알고 있다고 했다. “독자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반갑지요”라고 대답하는데 그분들이 최근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 교사가 불합리하게 아이들을 나누고 경쟁을 부추기는 바람에 왕따를 당하면서 불안장애가 시작되었다. 불안장애는 사춘기를 거치며 강박장애로 진행되었는데, 그 때문에 학교생활과 대인관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 학교라는 환경을 너무 힘들어해서 국제학교로 옮겨 다녔다.

고등학교까지는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대학도 한국보다 외국에서 다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홀로 영국 유학을 갔는데, 학업은 물론 생활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제 아이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것은 물론 부모와도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선배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 집안끼리 잘 아는 ‘아저씨’였기에 아이가 믿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게다가 의사였으므로 주변의 정신과 의사들과 상의하여 약도 처방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성심성의껏 아이를 돌보고, 고민을 들어주고, 꾸준히 투약도 한 결과 조금씩 나아지던 어느 날, 아마 혼자 집 근처 편의점에 갔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몹시 심하게 조롱을 당하고 심한 협박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청년은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시신을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직접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머리 속에서 청년의 모습은 내 아이의 모습으로, 그 아버지의 모습은 나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눈물이 고였다.

아가,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아팠니….

아가, 아무 것도 걱정 말고 훨훨 날아가거라…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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