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잔뜩 긴장하며 날카로워진다.
산책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눈인사를 나누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경계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어떤 사람은 먼 발치에서부터 자신의 마스크를 꼭 부여잡고 잔뜩 움츠리며 경계태세를 취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스크를 손으로 가리키며 무마스크인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며 지나치기도 한다.
자연은 이런 인간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인류의 불안과 공포의 상징이 되어버린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어지럽히며 기승을 부려도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하며 자연의 법칙에 순응한다.
9월이 어느덧 중반을 넘어 종반을 향하는 들녘을 바라보니 저절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 ‘가을날’을 더듬더듬 읊조리게 한다.
왠지 올해는 구절마다 짙은 고독과 슬픔이 가득 묻어난다.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일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R. M. 릴케, '가을날'
릴케의 종교적 신비주의에 바탕을 둔 기도조의 서정시는 가을의 계절 감각을 인생에 연결시킴으로써, 고독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시에 나타난 고독은 인간의 근원적인 것을 과감히 받아들여 즐기고 사랑하는 그런 고독이다.

또 다른 가을시로 김현승 선생의 ‘가을의 기도’를 빼놓을 수 없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김현승 시인, '가을의 기도'
가을을 맞이하여 고독을 통해 삶의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을 기도로 고백하는 이 시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가을이 삶의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는, 내적 성숙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을이 삶의 궁극적 경지에 다가가기 위한 절대 고독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는 이 시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많은 함의를 준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가장 비극적인 변화는 우리의 삶과 세상을 ‘언택트’로 바꾸어 놓았다.
인간들을 '고독한 삶의 공간'에 가두고 말았으니, 얼마나 큰 슬픔인가.
이 가을 릴케와 김현승 시인이 그 옛날 대자연을 바라보며 고독을 시에 담았지만, 우리는 이제 '코로나'에 갇혀 가을의 고독을 마음에 담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어쩌면 오래 머물게 될 ‘호올로 세상’에 익숙해져야 한다.

구월의 오송제를 호올로 걸으며 만난 가을 풍경들이 기운을 불어 넣어 준다.
붉은 상사화 무리들이 줄지어 늘어선 산책로, 남빛 하늘, 선선한 공기를 담은 맑은 호수의 풍경들이 '호올로 시대'를 짊어지고 사는 인간들을 위로해 주는 듯하다.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 같이,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박주현 기자(글ㆍ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