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곱게 물든 경복궁 향원정 전경.
단풍이 곱게 물든 경복궁 향원정 전경.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德)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크나큰 복(福)을 모시리라.'

정도전의 ‘태조실록 8권, 태조 4년(1395) 10월 7일’에 기록된 문구다. '전하와 자손께서 만년 태평의 업(業)을 누리고, 사방의 신민으로 하여금 길이 보고 느끼게 하기 위해 경복궁(景福宮) 짓기'를 청하는 글 중 일부다. ‘시경(詩經)’의 '주아(周雅)'를 인용한 글이기도 하지만 시공을 초월해 전해진 유명한 문구다. 

경복궁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경복궁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덕’과 복’이 가득한 궁궐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161(세종로)에 위치해 있는 경복궁은 조선시대의 궁궐 중 하나이자 조선의 정궁(법궁)으로 사적 제117호로 지정됐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 천도를 단행하면서 조선시대에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 내부 건물과 건물 사이 모습.
                           경복궁 내부 건물과 건물 사이 모습.

이곳은 조선왕조의 법궁으로 500년 역사의 상징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수난을 피하지 못했다.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과 박람회 개최 등으로 주요 전각이 철거되고 궁궐 영역이 축소되는 등 심각한 훼손을 겪었다. 그후 1990년부터 복원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근정전과 광화문 등 주요 전각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해마다 이맘 때면 고즈넉한 경복궁의 가을 정취가 아름다워 많은 인파가 찾는다. 지난 주말 완연한 가을 날씨 속에 찾은 경복궁 주변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런데 올 가을 경복궁을 찾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달라 보였다. 

고즈넉헌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경복궁 향원정.
고즈넉한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향원정.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의 추악한 권력의 사유화가 경복궁 곳곳에까지 묻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는 평소 내부 출입이 제한되었던 경복궁 근정전 안까지 들어가 임금이 앉는 의자인 용상(어좌)에 앉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장이 크다. 

또 윤 전 대통령 부부가 경복궁 건청궁에서 “문을 열라”고 지시한 뒤 명성황후의 침전인 '곤녕합'에 단둘이 들어가 10분 정도 머무른 것도 모자라 건청궁을 방문해 둘러본 다음 날 대통령비서실이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장에게 전화해 건청궁 안에 있던 왕실 공예품 대여까지 문의한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경복궁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예사롭지 않다.

경복궁 내부 건물의 위엄 가득한 모습.
경복궁 내부 건물의 위엄 가득한 모습.

2년 전인 2023년 3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사전 연락 없이 갑작스럽게 경복궁을 방문한 곳은 폐쇄된 명성황후 침전이란 점에서 충격과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경복궁 휴궁일인 2023년 9월 12일에 김건희 씨가 방문해 ‘근정전 어좌에 앉았다’는 궁능유적본부 기록이 밝혀지면서 공분이 더욱 거세다. 

당시 방문자는 김씨 외에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 등 10명이었는데 'VIP'로 지칭하며 협생문으로 들어와 근정전, 경회루, 흥복전을 둘러본 김씨가 어좌에 앉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국가유산 사적 이용, 직권남용, 문화재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 장면.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 장면.

이 때문인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경북궁을 찾는다고 한다. 가을이 깊어 가는 경복궁 내부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보다는 어좌와 황후 침전에 안내한 간신배들과 최고 권력을 사유화한 추악한 민낯을 떠올리며 분노를 표시하는 사람들로 더욱 북적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경복궁을 나서는 발걸음마다 씁쓸한 여운이 가득 남아 있다. 

/김미선 기자(여행 전문가)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