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138)

지리산 사람들의 피부가 하얗게 예뻐지는 계절이 왔다. 해마다 이맘 때부터 시작되고 이듬해 삼월까지 닥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지리산 사람들은 이때를 머슴 손도 선비 손이 된다고 했고, 닥종이를 만드는 동안 손이 하얗게 된다고 해서 '손 미인'이 난다는 계절이라고 했다.
지리산 사람들은 해마다 이맘 때부터 이듬해 삼월까지 종이 만드는 일을 천년을 시작하는 일이라고 했다. 자신들이 만든 종이가 천년을 간다고 해서 불려진 그 일은 닥나무를 베어 오는 일로부터 시작 되었다. 닥종이 만드는 수많은 과정 속에 든 사람의 손이 하얗게 되어서야 종이 한장이 세상에 나오는데 그 과정에 잿물 내리기가 있고 그것이 천년의 시간을 견뎌내게 한 기둥이다.
잿물은 여러 가지의 초본류를 태워 비율을 맞춘 재를 물로 내려 사용한다. 잿물은 그 재료의 섞음 비율이 아주 중요해서 좋은 종이의 판가름이 이것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지리산의 한지 잿물은 육재(六災)라 부르는데 메밀대, 콩대, 참깨대, 고추대, 참나무가지, 목화줄기를 태워서 만들어 사용한다.

이 6가지 재료 중에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잿물의 재료는 어느 것을 많이 사용해도 안 되고 어느 것을 너무 적게 사용해도 안된다. 각자의 재료 특성에 따라 그 양이 결정 되어서 제대로 된 잿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 잿물의 배합에 최고의 경지를 가진 사람을 마을에서는 잿물댁이라고 불렀다.
집안 대대로 잿물 내리는 경험이 상속되어 활용 되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종이를 만들때 그 잿물댁을 불러 도움을 받았고 농사때 품앗이로 잿물 품삯을 대신했다. 마을 공동체란 자기가 잘하는 것을 이웃 사촌의 재료로 삼아내는 것이었다. 지리산 천년 실상한지의 요체 유전자는 스님들의 잿물 내리는 비법의 상속체에 있었고 그 실체는 구전에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렇다.

닥종이 잿물 내리는 일은 사월 초파일날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보다 정성과 마음을 더 쏟아야 하는 일인데 바로 그것이다. 향토자원은 고을형 문화가 답이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