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민호 옥천신문 상임이사

지역언론의 모범적인 사례를 들 때면 흔히 거론되는 신문이 있다. 바로 옥천신문이다. 건강한 풀뿌리 지역언론의 표본으로 상징되는 신문으로 자리잡기까지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989년 '주민이 언론사의 주인'이 되는 '군민주'로 창간한 옥천신문은 지금도 여전히 지역신문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풀뿌리 지역언론을 대표하는 옥천신문의 편집과 제작 총괄을 맡고 있는 황민호 상임이사를 만나 온천신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건강한 지역공동체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지역신문과 인연”

황민호 이사
황민호 이사

Q. 오랫동안 언론활동을 해온 것으로 압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요?

A. 보통 언론 관련 학과를 나오면 서울에 있는 유명 언론사 취업준비를 합니다. 요즘은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언론권력이 여전히 막강한 터라 지망생들이 많지요. 저도 그랬습니다만, 실력이 없어서인지 몇 번 떨어졌지요.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자기합리화일수도 있었겠지만, 기자가 꼭 그런데 들어가야 기자인가, 어디든 들어가서 제대로 기자 역할을 하면 되는 거지. 남들 다 가려고 기를 쓰는데 나까지 보텔 필요가 있나. 남들 안 가는데 가자, 내가 필요한 곳에 가자. 이런 생각을 불현듯 한 것 같아요.

경쟁에 대한 염증일 수도 있고 회피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때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곳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운 좋게 대학 교수님께서도 작은 지역공동체 언론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와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농촌지역에 가고 싶다. 거기 가서 건강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황민호 이사
       황민호 이사

Q. 옥천신문에서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근무하게 됐으며 주로 하는 역할들은 무엇인지요?

A. 때마침 공고가 났지요. 2002년 4월이었을 거에요. 이전에 대전에 있는 작은 언론사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요. 나름 괜찮았는데 얼마 안 가서 망했지요. 그 때 참 열심히 했는데 사람들이 별로 신문도 안 보고 기사도 안 읽더라구요. 피드백과 반향이 없는 기사는 기자를 나태하게 만들어요. 그렇게 다시 옥천에서 시작하고 나서는 달랐어요.

주민들이 신문을 읽는 열독율을 체감할 수 있고 지역 안에서 매체파워가 굉장하다는 것을 피부로느낄 수 있었지요. 거쳐간 선배들이 여러 악조건 속에서 일구어 나간 산물이었겠지요. 나름 로망이 있었습니다. 시골 마을 경로당을 찾아서 할머니 손 붙잡고 막걸리 마시면서 이야기 들어주는 시골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소한 마을 민원이라도 귀담아 들어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기자였으면 좋겠다. 부패나, 부조리에는 눈 부릅뜨고 제대로 지적하고 파헤치는 기자였으면 좋겠다. 그런 로망들이 어렵잖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신문사 살림살이 전체 총괄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자라는 정체성 갖고 있어”

옥천신문 사옥 입구
옥천신문 사옥 입구

편집권 독립을 우리 언론은 굉장한 것 마냥 이야기해왔지만, 우리 언론의 현실이 워낙 바닥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자유롭게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데 내외부 권력에 따라 기사가 비틀어지거나 삭제되는 것은 참 후진적인 상황이죠. 적어도 옥천에서는 그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물론 열악하고 유혹도 많았겠지만, 오롯이 신문만으로 먹고 살아왔던 것, 한부 한부 구독을 소중하게 생각한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다른 수익 사업에 손을 대거나 광고료 의존 비율이 높아지면 신문사가 한 눈 파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돈 나오는 구멍에 충실하게 되고 어느순간 그렇게 변형되게 되어 있어요.

그 생리를 너무나도 잘 알면서 ‘생존'을 이유로 원리원칙을 하나둘 무너뜨리게 되면 실상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 거죠. 생존은 물론 지고지순한 가치이지만,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곳에 남아있는 것처럼 허망한 것이 있을까요.

지역신문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고 박봉이죠. 그런데도 꾸준히 들어오는 친구들 보면 용해요. 아직 젊은 혈기,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배우고 실천해보겠고 오는 거거든요. 그게 아니면 남아있을 이유가 없는 거에요. 이 곳은 다행히도 구독료 비중이 재정의 50%가 훌쩍 넘었어요.

대단한 일이죠. 광고나 수익사업에 흔들릴 여력이 그만큼 줄어든 거죠. 독자와 주민이 중요하다는 것이 시스템으로 증명된 거죠. 언론사는 수익구조가 어떻게 되냐도 상당히 중요해요.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저는 지금 신문사 살림살이 전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기자라는 정체성을 갖고는 있어요. 이 곳은 30여년 전 89년이죠. 그 당시 주민들의 간절한 열망으로 군민주 신문으로 만들어진 곳이에요. 어떤 염원이 있었지요. 우리의 말과 글을 갖고 싶다. 우리의 삶을 우리가 직접 기록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들이 물처럼 넘실대지 않았을까. 의존하거나 의탁하지 않고 지역의 힘으로 지역을 이롭게 해보자. 그런 의지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5천만원도 안 되는 돈과 넘치는 애정과 결연한 의지로 신문을 만들었지요. 그런 흐름과 기조가 유지되고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지역신문'이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지역사회를 재구성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체계와 자본 체계에 낑겨 있어 유령처럼 배회하는 사회를 구체화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말과 글, 언론, 공론은 자본과 권력에서 만들거나 좌우되서는 안 되거든요. 민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론사는 사적기업형태를 띠고 있지만 공공기관이라 생각합니다.

실제적으로 옷은 비영리 사단법인이나 사회적협동조합의 옷이 맞지 않나 생각하기도 해요. 우리의 꼴은 주식회사지만, 실제로는 노동자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론사 경영이란게 사실 따로 없어요.

다른 수익사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구독료와 광로료 들어오는 거 잘 갈무리해서 인건비와 운영비로 다 지출하거든요. 여기는 참 가난한 신문사에요. 한 달 인건비 운영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거든요. 사주가 삥땅치거나 할 일도 없어요. 그냥 저도 노동자입니다. 벌어들인 돈 노동조합과 협의하여 배분합니다. 그게 다에요.

"지역언론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그 지역사회의 주인은 될 수 없어, 촉매제나 매개역할 충실해야“

옥천신문 로고
옥천신문 로고

Q. 지역언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A. 지역사회란 이야기를 꺼냈는데요. 저는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사회의 근육이 단단하고 힘이 세서 국가와 자본체계를 부릴 수 있어야 해요. 풀뿌리 민주주주의 이야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이야기 하는데 지역언론이란 제대로 된 공론장 없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망상이죠. 건강한 지역언론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마지막 보루이다. 이거 강조하는 말이에요. 지역언론 앞에 ‘건강한’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참 우스운데요. 사이비 신문이 워낙 창궐하는 지역이 많다보니 참…

포털이나 방송, 신문 지상에 회자되는 쓰레기 뉴스나 낚시성 뉴스, 그리고 별 생산적이지 않은 뉴스의 블랙홀은 여전해요. 왜 지역에 살면서 서울의 일에 그리 관심이 많게 되냐 하면요, 미디어가 그렇게 조장을 하거든요.

지역 군의회나 군에서 집행하는 사업,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여러가지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공론을 보태야 내 삶터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질 텐데 그런 경험이 별로 없는 거에요. 지방자치제는 시작했는데 이를 견제, 감시, 비판할 언론이 없으니까 지들끼리 헤쳐 먹는 경우가 허다해요. 안타깝죠.

저는 지역언론으로 이를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역언론이란 시민의 무기로 공론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를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삶의 역사를 우리가 스스로 기록해야 한다. 지역언론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그 지역사회의 주인은 될 수 없어요. 촉매제이고 매개 구실을 하는 거거든요.

그 지역사회의 진정한 주인은 가장 약한 자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주인을 말을 잘 모시고 따르는 게 지역언론의 역할이구요. 목소리를 채집하고 사실을 쓸어담아 그 이면의 맥락과 진실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지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역농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의 지향은 어디일까라는 화두를 갖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주민들과 주파수를 맞추고 계속 부대끼면서 어떻게 살아야 서로 모두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화두를 갖고 사는 거죠.

“지역에 살다보니 오지일수록 변방일수록 지역에 대한 애정이 더 끈끈”

Q. 오랫동안 지역언론 활동을 해오시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줄 압니다. 그중에 가장 큰 어려움과 가장 큰 보람 있었던 일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A. 어려움이 있었지요.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죠. 루틴한 일상, 반복되는 취재에 염증을 느낄 때도 있었고요. 사람의 민낯, 지역사회의 바닥을 볼 때도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후배들한테 그래요. 환멸의 강과 혐오의 늪을 건너서 그리고 허무의 바다를 관측하고 나서도 노를 저어야 한다고요. 거기서 멈추지 말고 그래서 망망대해에서 표류하지 말고 노를 저어 가야 한다고요.

그러면 서서히 무언가 드러나고 만나게 될 거라고. 저도, 사실 1,3,5,7,9로 힘들었거든요. 고비가 있어요. 그롤 때마다 나름 극복을 해왔는데요. 제가 기억나는 두가지 방법 중 하나는 청산면으로 이사를 했던 거에요.

옥천에서 가장 먼 곳이거든요. 3년 동안 출퇴근 하면서 살았어요. 기름값과 버린 시간만 하면 어마어마하죠. 40분 정도 걸리거든요. 면에 살아보고 싶었어요. 어떤 감정이고 정서인가. 제가 도시 출신이라 동에만 살다보니 면에 대한 감수성이 없었어요. 살아보니 느끼는 것이 있더라구요.

오지일수록 변방일수록 지역에 대한 애정이 더 끈끈하다. 옥천 사람이 아니라 어느새 청산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맨 처음에는 기자가 이사 온다고 하니까 덜컥 겁을 내더라고요. 특히 공무원들이요. 그냥 무던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지냈던 것 같아요. 어울렁 더울렁 둥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얼마 안 되는 지역 아이들과 친해졌고 면 사람들하고도 많이 알게됐죠.

이사 나올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청산 박약국 약사님한테 결혼하면서 이사간다고 말을 할 때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그만큼 정이 많이 들었다는 거겠지요. 또 하나는요. 정말 신문사를 그만두고 3년 동안 로컬푸드 급식배달일과 지역시민사회 일을 했었어요.

그 때도 깨달은 게 많아요. 10년 동안 기자생활 했으면 지역과 사람들을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어요. 큰 오만이고 교만이었지요. 노인장애인밑반찬 배달과 영양플러스 배달을 하면서 가보지 못한 곳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아! 내가 그 동안 가던 곳만 가고 만나는 사람만 만났구나 하는 성찰이 있었지요.

제가 신문사 나오고서 옥천신문 기사 하나를 보고 충격을 먹었는데요. 100만원대 미만 소득자가 34%나 된다는 거에요. 그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구나. 다수임에도 모래알처럼 흩어져 유령처럼, 투명인간처럼 사는 구나 느꼈지요. 언론이 중요하구나하는 생각을 더 느꼈고 그래서 더 잘 해보고 싶어서 다시 들어온 거에요. 지금은 약발이 다 떨어진 거 같기도 한데, 그 때 두번 큰 보약을 먹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오래 남아있었는지도 몰라요.

"투쟁과 저항의 한켠에는 반드시 대안의 건설이 자리 잡아야"

Q. 제2의 안티조선운동(리본달기)을 옥천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이며 주민들 반응은 어떤지요?

A. 안티조선은 사실 상징적인 거죠. 조선일보로 대변되는 족벌 재벌신문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수많은 곡학아세를 어떻게 지역에서 차단할 수 있을까. 미디어도 편식하면 중독되고 몸이 아프거든요. 그래서 풀뿌리 언론개혁운동을 시작하는 거죠. 투쟁과 저항의 한켠에는 반드시 대안의 건설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봐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사랑을 할 때 백만송이 꽃이 피어나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미워하는 그 마음으로 그럼 무엇을 더 사랑할까 하는 답이 나와야 된다고 봐요.

저는 괴물같은 거대 언론의 대척점에는 진보언론이 아니라 풀뿌리 언론이 있다고 보았아요. 좌도 우도 아니고 아래로, 생활정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로 대안의 삶을 만들 수 있다. 우리의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각 지역마다 다양한 꽃이 만개해야 한다.

국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살게 해주고 그 토대에 지역이 각자의 정서와 토질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에 대한 투쟁, 새로운 지역사회의 건설, 풀뿌리 공론장의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 지점에서 안티조선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언론이 작은 군단위에서라도 창간할 수 있다면 공익적 효과는 클 것”

Q. 옥천신문은 독자적인 구독운동과 주민 참여가 높기로 유명한데, 실제 운영하면서 느낀 소회와 정부나 지자체에 바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언론까지 썩었다면 그건 종친겁니다. 말과 글은 최후의 보루죠. 돈과 힘에 의헤 좌지 우지되어서는 안 되는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절대반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는 시작했지만, 작은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건강한 언론은 패키지로 만들어놓지 않았지요. 이를 지원하는 정책이라고 지역신문발전지원법이라고 만들었는데 이것도 한시법이고 사무국 운영도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지방자치제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인 1988년부터 풀뿌리 언론들이 지역사회의 힘을 모아서 들불처럼 여기저기서 창간하긴 했는데요. 재정압박으로 여러 열악한 여건으로 인해 살아남아 지금까지 유지되는 언론사가 몇 안 됩니다. 지역신문 지원에 대한 총체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하지 않고서는 지금 지원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요. 예산 배분하고 컨퍼런스 한번하고 이 정도로는 어림 택도 없거든요.

전국에 지역신문 하나 없는 지역도 수두룩합니다. 사이비신문만 창궐하는 곳도 정말 많아요. 말과 글의 썩은내가 진동을 하고 있지요. 이거 바꾸려면 전국 지역신문의 실태파악부터 하고 없는 곳은 지역신문을 어떻게 만들어 지원할 것인가 로드맵이 나와야 합니다. 지역신문발전협의회에 커뮤니티저널리즘 센터와 연구소, 그리고 풀뿌리청년언론학교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저널리즘과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다릅니다. 일반저널리즘이 세상을 보는 창이라면 커뮤니티저널리즘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지역신문 창간부터 안정적 운영과 기자 양성까지 전반적인 틀을 통째로 설계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주민들과 시민사회에서 언론을 하나 만들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건강한 언론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 주고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건강한 언론들이 작은 군단위 지역에서라도 하나 둘 창간할 수 있다면, 그리고 변화될 수 있다면 공익적 효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수많은 낭비 예산이 절감될 것이고 많은 부조리, 부패를 드러내 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군청 등 관공서 출입처 위주의 취재보도 시스템과 계도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옥천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요?

A. 계도지는 당연히 폐지되어야지요. 어떻게 주민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고 세금으로 특정신문을 일괄 구독하여 뿌린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요? 이건 또 예산 낭비이자, 또 다른 폭력입니다.

서울에서는 각 자치구별로 이 계도지가 횡행하고 있다고 은평시민신문과 미디어오늘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정말 서울의 부실한 풀뿌리, 아무런 관심도 없는 풀뿌리시민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상징적입니다. 자그마치 100억원이랍니다.

1년에 뿌려지는 계도지 예산이요. 이걸 여지껏 방관하고 있는게 말이 되나요. 이 정도 예산이면요. 해마다 작은도서관을 수십개 만들 수 있고요. 건강한 풀뿌리 지역신문을 만드는 종잣돈으로 쓸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이에요. 서울신문, 지금 나라에서 주식 파는 것 관련해서 투쟁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계도지 예산 과감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언론노조 뭐하는 겁니까. 이런 계도지 예산 방치하고서도 무슨 언론개혁 투쟁을 한다고 하는 겁니까. 이거 쉽게 폐지할 수 있는 예산입니다. 이미 서울 말고 다른 지역에서는 대부분 폐지했지요. 서울에 건강한 지역신문이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썪어빠진 계도지 예산 때문입니다. 눈에 안 띄는 자치구에서 야금야금 삥 뜯어가려는 행태 바로잡아야 합니다.

"보도자료 거의 쓰지 않아, 한 호에 게재되는 기사 중 대부분이 단독과 특종“

            창간 30주년을 맞은 옥천신문 2020년 1월31일자 1면.
            창간 30주년을 맞은 옥천신문 2020년 1월31일 자 1면

Q. 지역민들에게 다가가는 기사(의제)발굴과 지역문화 행사들(옥천언론문화제 등)을 많이 하고 있는데 주민들에게 반응이 좋은 대표적인 사례들을 소개해 주시지요.

A. 다른 비결이 없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만, 주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소식을 전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소식을 발굴해 전합니다. 보도자료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한 호에 게재되는 기사 중 대부분이 단독과 특종이죠. 우리는 그런 꼬리표를 달지 않습니다. 네이버나 구글 플랫폼을 활용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려고 목 매달지 않고 우리 자체 플랫폼을 지키고 있습니다. 클릭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낚시성 기사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쓰레기 광고를 다닥다닥 달지 않습니다. 옥천신문 인터넷은 그야말로 청정지역입니다. 언론이 언제부터인가 포털에 종속되어 그 검색 창안의 세상에 갇혀버렸습니다. 슬픈 일이죠. 그런데요. 네이버나 구글에 옥천을 검색하면요. 관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가 매체명만 달리해서 똑같은 기사들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요. 전혀 영양가 없는 기사들이죠. 정작 주민들이 보고 싶어하는 기사는 네이버나 구글에 있지 않지요.

그것이 바로 옥천신문의 생존 비결입니다. 클릭수가 몇 백만인다 그래서 돈을 얼마 벌었다는 이런 내용이 회자되는 것이 참 부끄러운 일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요. 돈구멍을 찾아서 시스템이 움직이게 되어 있어요. 생존해야 하니까요. 그 돈구멍이 어디로 뚫려 있느냐가 중요한데요. 불특정 다수의 클릭과 거기에 따라 붙는 광고로 나올 수 밖에 없다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기검열이 되고 거기에 자연스레 맞춰가는 거지요.

언론사의 그릇이 이걸 지켜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지요. 대세다 뭐다 하면서 트렌드다 뭐다 하면서 좇아가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에요. 그 안에서 쓰는 기사들이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얼마나 정의로울까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출입처를 못 벗어나는 언론, 늘 대리인을 통해 주민을 대변하려고 했던 언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리 갔다리 하는 언론, 클릭수에 따라 붙는 광고에 자유롭지 못한 언론들을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현현하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언론사의 영향력에 비해 뉴스 결과물들이 형편 없는 것들이 많아요. 별 차이가 없는 복제품들이 무수하게 양산되고요. 그러면서 모든 이슈의 블랙홀을 여기저기 만들어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어요. 생산적이지 않은 논쟁들을 과열시키면서 쓰레기 뉴스의 과잉으로 인해 정작 필요한 뉴스는 없는 뉴스의 사막화를 만들어버리죠

"커뮤니티저널리즘 센터, 청년언론학교 잘 운영 되었으면...“

Q.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A. 저는 옥천이라는 작은 나라에 산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지역농촌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자치와 자급, 순환과 공생의 가치로 지역을 일구고 싶어요. 그런 꿈틀거림을 기록하고 싶어요. 지역은 쪼그라들고 여기저기 중병이 걸렸는데 중뿔나게 지역신문만 잘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지역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옥천신문이 30년 동안 커왔는데 너무 바깥의 연대에는 인색하고 홀로 독야청청만 했던 거 아닌가. 더불어 숲이 되어야 하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의 편린들이 스쳤지요. 그래서 지역신문이 없는 곳에 또 열악한 곳에 지역신문을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고요. 청년 풀뿌리언론 기자들도 길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커뮤니티저널리즘 센터도 만들고 청년언론학교도 운영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바람은요. 여기서 길러낸 친구들이 전국 지역 방방골골에 가서 민들레 홀씨처럼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자리 잡고 건강한 지역신문을 만들어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싶어요. 

※이 글은 필자가 '<사람과언론> 제10호'에 게재한 인터뷰 중 시의성에 맞게 일부를 수정한 것임.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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