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135)

고을은 9월의 팔경과 오곡백과 풍년으로 무릉도원이 된다. 자연경과 인간경의 합이 고을 팔경이라고 했다. 그 말의 인문성은 무엇일까? 자연이 뽐내는 경치와 인간의 마음을 자연에 들이댄 경치의 합이 팔경이 아닐까 싶다.

나라와 고을에는 자랑하고 싶은 경치가 있고 선조들은 십경이니 팔경이니 하는 말로 그 경치들을 세상에 내 놓았다. 춘향가에도 어사가 된 이몽룡이 완산팔경을 구경한 다음 남원을 향해 내려갔다는 대목이 나온다.

숲정이,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나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소강남(小江南) 여기로다. 기린토월이며 한벽청연, 남고모종, 곤지망월, 다가사후, 덕진채련, 비비낙안, 위봉폭포, 완산팔경을 다 구경하고 차차로 암행하여 내려올 제' 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몽룡이 남원으로 암행행차 할제 급한 마음을 잠시 애두르며 완산팔경을 다 감상하고 다녔다는 이야기이다. 그처럼 고을 팔경 구경은 사람의 일중에 가장 앞서 마음을 내는 일이기도 했다. 천년고도 남원에도 팔경이 있다.

1.교룡낙조(蛟龍落照) : 교룡산에 비치는 석양 풍경

2.축천모설(丑川募雪) : 함박눈이 내리는 축천(향교동 하천)의 저녁 설경

3.금암어화(錦巖漁火) : 요천에서 밤에 횃불로 고기 잡는 풍경

4.비정낙안(費亭落雁) : 비안정(노암동) 뜰 앞 요천 백사장에 떼 지어 날아다 니는 기러기 풍경

5.선원모종(禪院暮鐘) : 해 질 녘에 은은히 들려오는 선원사의 종소리

6.광한추월(廣寒秋月) : 광한루 하늘 위에 높이 떠 있는 가을 달

7.원천폭포(源川瀑布) : 주천계곡을 내려 가르며 아홉 폭포를 이루는 구룡폭포의 물소리

8.순강귀범(鶉江歸帆) : 황혼과 함께 돌아오는 순자강의 고깃배 무리

고을의 팔경은 무엇일까? 자연이 자신의 모습중 가장 빼어난 자랑거리 8개를 고을에 꺼내 놓으면 인간이 그곳에 마음을 덧칠하여 풍경을 낸 것이 팔경이 아닐까 싶다.

즉 팔경은 자연경과 인간경의 합이고 후손에게 대를 이어갈 고을의 상속경인 셈이다. 남원 교룡산이 고을을 내려보는 우뚝솟은 수호산으로 자연경이 될때 남원 사람들은 그 산너머로 가는 일몰을 인간의 경으로 삼아 교룡낙조라는 팔경중 하나를 탄생시켰다는 말이다.

나머지 7개의 경치도 그러한 태생 유전자를 갖고 세상에 나와 팔경이 된 것이리라. 선조들의 고을팔경은 고을 공동체의 일상적 활용 공공재였고 우리들의 고을팔경은 눈뜬 봉사적 유물이다. 백성이 고을의 주인인 것은 백성의 마음이 덧칠해진 절경이 팔경으로 고을을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리라.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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