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전주방송총국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패트롤 전북' 2025년 9월 3일 방송
KBS전주방송총국 라디오 '패트롤 전북' 9월 3일 방송(유튜브 동영상)
KBS 전주방송총국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패트롤 전북'이 제62주년 방송의 날을 맞아 3일부터 5일까지 연속 사흘 간 ‘방송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등의 주제로 특집 방송을 진행한다. 이번 방송의 날 특집 토론은 김진형 전 KBS전주총국 아나운서 부장과 김명성 전 KBS전주총국 보도국장, 박주현 <전북의소리> 대표가 패널로 참석해 함윤호 앵커의 진행으로 3일에는 ‘지역 방송이 걸어온 길’, ‘방송의 지역성과 공공성’, ‘지역 방송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방송3법 개정안과 지역 방송 개선 과제’ 등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둘째 날인 4일에는 ‘지역 방송의 역할과 과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공공성 강화 방안’, ‘지역 공영방송이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극복해 나아갈 방안’, ‘방송과 지역사회 연대 및 공론장 형성 필요성’ 등에 관한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펼칠 계획이다. 이어 마지막 셋째 날인 5일에는 ‘함 앵커가 간다’에서 KBS전주총국이 걸어온 발자취를 직접 찾아 현장 주민들과 전문가 등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KBS 전주방송총국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패트롤 전북'은 김로연 작가의 기획·섭외와 함윤호 앵커(언론학 박사)의 사회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8시 30분부터 9시까지 30분 동안 진행된다. 다음은 방송의 날을 맞아 특집으로 진행된 토론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방송의 날 맞아 지역방송이 걸어온 길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생각해 보는 시간 3회 연속 마련"
함윤호: 안녕하십니까? 9월 3일 오늘은 방송의 날입니다. 1947년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법이 공포된 이날을 기념해서 제정된 방송의 날은 방송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 역사 속에는 KBS전주방송총국도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있어 왔습니다. 매일 전하는 생생한 뉴스, 깊이 있는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성숙한 공론의 장을 만들고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철저히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전북지역의 눈과 귀가 되어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시대의 진실을 밝히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며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며 지역의 오늘을 성실히 기록해 왔습니다. 방송의 날을 맞아 지역방송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세 분을 모셨습니다.
먼저 <패트롤 전북>에서 '언론 돋보기' 패널로 활동해 주신 <전북의소리> 박주현 대표님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KBS전주총국과 함께 해왔던 인물들입니다. 1978년도에 입사했다고 들었습니다. 전 아나운서 부장있던 김진형 전 부장님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KBS전주총국 전 보도국장이었던 김명성 전 국장님 어서 오세요.
시간이 얼마만큼 거슬러 올라가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과거가 현재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어제와 같고 아직도 과거에 머문 듯한 모습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방송의 날과 내일에 이어 모레까지 3일간 KBS 역사의 흔적들을 조명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세 분의 말씀을 통해서 방송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오랜 선배이신 김진형 전 부장님부터 방송의 날을 맞은 소감부터 말씀해 주신다면요?
김진형: 갑자기 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익숙한 분들도 계실 것이지만, 방송의 날 소감을 준비하면서 생각나는 게 1978년 입사를 하면서 그 당시 KBS 사장의 훈시 중에 “안테나 숲을 쳐다보면 공포감을 느낀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그 의미를 깊이 느끼지 못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무게감이 점점 무겁게 느껴지는 게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채널도, 매체도 많아지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공공성이나 공정성 문제에 대한 책임감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올해 방송의 날은 좀 더 마음이 무거운 것 같습니다.
함윤호: KBS전주총국 보도국을 이끌어 왔던 김명성 전 보도국장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텐데 오랜만에 스튜디오에 나오셨습니다. (기분이)어떠신지요?
"‘어두운 날’, ‘아무도 모르는 날’이 아닌 전 국민이 기억하는 '방송의 날'이 되기를 기대"
김명성: 반갑습니다. 저는 방송의 날을 국민들이 잘 모르고 도민들도 잘 모른다는 점에 대해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오늘이 ‘어두운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군정이 9월 3일 HL 콜 사인(호출 부호)을 가져다 준 날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9월 3일 방송의 날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인데 오늘을 ‘어두운 날’ 또는 ‘아무도 모르는 날’이 아닌 전 국민이 기억하는 방송의 날이 되기를 다시 한번 기대해 봅니다.
함윤호: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나서 미군정 속에서 출발한 방송의 날이란 사실을 짚어주셨습니다. 다음은 전북대 언론학 박사 1호이신 박주현 <전북의소리> 대표는 현재도 언론계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신데, 방송의 날을 맞아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박주현: 앞서 KBS전주총국의 전설로 기록될 만한 두 분이 말씀해 주셔서 KBS전주총국의 역사를 다시 들춰보는 느낌입니다. ‘방송의 날’하면 언론의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한데 방송이 1926년 경성방송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새삼 알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KBS전주총국은 1938년 이리방송 개국 이후 벌써 87주년을 맞이하는데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대한민국 언론은 물론 전북 언론의 역사이자 맏형으로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디지털 다채널 다매체 시대를 맞아서 방송들도 상당히 큰 위협을 느끼는 동시에 위기의 시대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 윤석열 정권에서는 KBS 공영방송이 전례 없이 낙하산 사장 논란 등 탄압을 많이 받았는데 그동안 쌓아왔던 영향력이나 신뢰도가 실추됐는데 최근 ‘방송3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공영방송의 가치와 신뢰에 대한 새로운 어젠다가 던져져 국민의 방송, 국민의 편에 선 방송, 국민이게 한발 더 다가가는 방송 등 그야말로 국민의 방송으로 새로 태어나길 바라는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차제에 이번 방송의 날은 상당히 의미 있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함윤호: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한국방송 KBS’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 떨렸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공영방송이 걸어온 길을 회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KBS전주방송은 1938년 10월 1일 이리방송국으로 개국을 합니다. 1947년 5월 15일 전주 고사동 연구소에 이어 전쟁 중인 1952년 10월에는 남원방송국이 동충동에 문을 엽니다. 그리고 1959년 4월 11일 전주로 완전히 이전해 전주방송국이 됩니다. 이어 1980년 통폐합이 있었고, 1978년 전주 고사동에서 금암동으로 사옥을 이전합니다. 그리고 2011년 이곳 효자동으로 이전해 새로 개막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사동과 금암동, 효자동 모두를 거쳐 온 분이 김진형 전 아나운서 부장이십니다.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1978년 광역 단위 TV 개국...당시엔 흑백 시대, 1980년 컬러 시대 맞았지만 많은 고충과 실수 등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러"
김진형: 저는 1978년 5월 입사입니다. 그런데 10월에 금암동 시대를 엽니다. 당시 입사할 때 TV방송을 준비했었고 인원 충원 과정에서 입사가 된 것인데, 그 시절은 추억이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초기(전주 고사동) 건물 아래 층에 스튜디오 2곳, 녹음실과 조종실 등이 있었고 2층에 행정부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함윤호: 박주현 대표님이 갖고 계신 ‘전주방송 50년사’를 보니까 여러 과거 역사가 잘 기록돼 있는데 당시(1978년)에 5개월을 고사동으로 다니시다 금암동으로 옮기셨군요?
김진형: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전주에 TV방송국이 없었던 시절인데 서울과 부산만 TV방송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시에 1978년 광역 단위로 TV방송이 개국됐는데 당시엔 흑백TV 시대였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컬러시대를 맞았지만 많은 고충과 실수 등을 거쳐 오면서 지금(오늘)에 와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함윤호: 그간 보도의 변화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김명성: 저는 입사가 1989년입니다. 입사 당시 전주 금암동 사옥에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는데 그 현수막에는 ‘민주화’, ‘특채 직원은 물러가라’ 등의 내용이 있었던 걸로 기업이 납니다. 당시 방송국 문화는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 통폐합이 이뤄진 때문에 각 방송에서 모인 인원들이 점심 먹을 때도 끼리끼리 모여 대화가 없었고, 기자들이 15~20명 정도였으나 서로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고 따로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이런 문화가 약 10년 정도 이어졌기 때문에 이게 KBS 상처구나 하는 느낌을 지녀왔습니다.
“계엄 이뤄지면 우리가 방송국 싹 접수하고 이것들을 우리가 가지고 노는데...군인들 발언 섬찟”
김진형: 저는 입사 당시 '계엄'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 무렵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이 터지고 군 트럭과 군인들이 회사에 몰려오고 원고를 검열 받아야 했던 기업이 납니다. 군인들로부터 빨간 도장을 받아야 뉴스를 진행했던 기억이 나는 동시에 그 이후 새만금의 변화라든지 많은 사회적 변화가 그 이후로 진행돼 왔던 기억들이 남습니다.
김명성: 계엄과 관련해 저는 2000년 초반에 들었던 얘기인데, 우연히 을지훈련 기간 중에 35사단이 (방속국에서)도상훈련을 하면서 군인 2명이 지나가며 “계엄이 이뤄지면 우리가 방송국을 싹 접수하고, 이것들을 우리가 가지고 노는데...”라는 말을 듣고 섬찟했습니다. 그 계엄이라는 말이 지금 더욱 생각이 납니다.
함윤호: 작년 12월 3일에도 계엄군이 방송을 모두 장악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언론 특히 공영방송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는 계엄을 계기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것 같은데 박주현 대표님은 어떻게 보세요?
"최근 방송3법 개정안 통과 다행...방송 흑역사, 윤석열 정권에서 끝나야"
박주현: 암울한 역사의 굴레를 함께 해 온 KBS 공영방송과 방송의 역사를 함께 얘기를 하게 되는데, 공영방송 설립 목적은 방송법 43조 1항에 명시돼 있듯이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영방송하면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방송을 한다는 첫 번째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의 이익, 공공의 안녕, 질서 등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데 KBS의 경우 국가기관방송이자 재난주관방송사로서 공영방송의 선두이자 핵심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권력의 시녀 대상이 되거나 언론개혁을 주창하면서도 마찰과 희생을 가장 먼저 당하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봐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국민의 방송을 주창하며 공영방송의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는 경의를 표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자본 권력 때문에 선거의 전리품이라는 말을 들어온 게 사실입니다. 그동안 미디어 발달 역사에서도 보아왔지만 방송과 신문은 늘 서로 경쟁하며 전쟁까지 벌여왔습니다.
1920년대 활자 미디어가 전파 미디어 등장으로 제2기로 접어들었고, 1970년대 영상 미디어 등장으로 제3기로 접어들었고, 2000년대에는 디지털 인터넷 미디어 시대의 제4기로 이어오기까지 방송의 역할은 크고 중대했지만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전파의 희귀성 때문에 공공재로 국가가 일부 관리해 온 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늘 반복돼 온 흑역사가 이제는 윤석열 정권에서 끝나야 합니다. 다행히 최근 방송3법 통과 이후 그러한 기대가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명성: 한 마디 더 추가하자면 지역에서 언론학계와 시민단체도 그렇듯이 ‘여의도는 전주총국만 따라가면 된다’는 말을 실제 많이 들었습니다.
함윤호: 저는 2004년 합격해서 2005년 4월 금암동에서 첫 근무를 했기 때문에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통폐합되고 당시 아나운서가 13명이 있었는데 지금 전주총국 아나운서는 3명이 있습니다. 방송3법을 앞서 말씀해 주셨는데 수신료의 현실화와 지배구조 개선, 독립성에 관한 숙제가 늘 붙어 다녔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뉴미디어 상황에서 숙제가 쉽게 풀릴 수 없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비록 작지만 시사프로그램인 이 <패트롤 전북>이 벌써 3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세 분의 입장을 듣고 싶은데 먼저 박주현 대표님부터 말씀해 주신다면요?
박주현: 방송법이 80년대 이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동안 개정이 이뤄지지 못하다 지난 윤석열 정부 시절에 두 차례 방송3법 개정이 시도됐으나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습니다. 그러다 최근 이재명 정부 들어서면서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서 그런지 방송3법 개정에 따른 변화될 내용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간 권력이 늘 방송을 장악하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내고 프로그램을 폐지하며 끊임없이 (방송을)규제하려는 것은, 이를 테면 당근책·회유책·강압책·세무정책 등을 통해 담금질해 온 바람에 정권에 지나치게 눈치를 보거나 심지어 시녀 소리를 듣게 할 정도였는데, 이번 방송3법 개정을 통해 탈피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새 공영방송의 사장 선임이 기존에 대통령이 임명했던 것에 비해 100명 이상의 사장추천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했고, 3명 이하의 사장 후보를 이사회에서 임명 제청하도록 함으로써 다양성·다원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이사회 추천도 국회의원 추천 비중을 100%에서 40%로 줄인 대신 나머지는 시청자위원회와 학계, 법조계 등으로 확대한 점, 그리고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두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보도책임자의 임명 동의제도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본사가 서울에 있는 방송에 국한하지만 앞으로 지역 방송에도 이러한 물결의 흐름을 타고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앞으로는 KBS지역총국장도 지역에서 추천 또는 선거제로 이뤄지리라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 저널리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위기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총국장도 100명 이상의 도민 추천위원회 구성해 선출 절차 밟아야"
김명성: 방송3법 중 획기적인 게 사장 선출제입니다. 말 그대로 국민이 선출하게 되는데 지역에까지 연장해야 합니다. 추후에 입법 보완이 돼서 지역에서도 여의도 사장을 선출하듯이 지역총국장도 100명 이상의 도민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선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KBS가 국민의 방송, 도민의 방송이란 말을 들을만 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함윤호: KBS 주인은 바로 시청자입니다. 시청자가 주인인 가운데 시청자인 지역민이 함께하기 위해서는 지역민이 대표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한때는 신뢰도와 영향력 1위였던 KBS가 이제 그 말이 옛말이 됐는데, 그 말을 되찾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 시작은 역시 보도 뉴스에서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요?
김명성: 2004년 통폐합 전에는 전주, 군산, 남원으로 나뉘어 갑지구·을지구로 구분되어 인력이 제대로 장악이 안 되고, (취재)인력은 많은데 뉴스의 질은 평균 이하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전주로 통합돼 총국 중심제로 운영되면서 드디어 심층취재가 나오고 하루 종일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기고 뉴스의 힘이 생기게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함윤호: 남원, 군산, 전주에서 모두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진형 대선배께서 KBS의 달라진 위상과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조언 또는 질책을 해주신다면요?
김진형: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무겁다고 했는데 끝도 무겁다는 말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김명성 국장님 말씀대로 각 지역국을 통폐합하면서 지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KBS의 상황만으로 통폐합을 하면서 각 지역이 소외가 됐습니다. 따라서 언론과 정보에서 그 지역이 소외됐는데 당시 지역민들의 엄청난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 지역 언론의 영향력이 적어지면서 소외되고 축소된 것으로 보는데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로컬성을 더욱 강조하면서 개선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함윤호: 방송의 날을 기념으로 이 시간을 마련했는데 더 깊은 얘기는 내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부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내일 세 분을 다시 만나 2부에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박경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