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133)


백성의 민원은 '체'에 걸러내듯 말고 통째로 받아 살펴보고, 토호들의 민원은 '챙이(키)'로 까불어 검불 걸러내듯 해야 한다는 지리산 마을 이야기는 토호 비리가 날로 판치는 현대 사회에도 많은 교훈을 던져준다.
사전전 의미로 체는 '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거르는 데 쓰는 기구'이며, 챙이는 키의 방언으로 '곡식 따위를 까불러 골라내는 그릇'을 말한다.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지리산 작은 고을에 원님이 부임하자 크고 작은 모임들에서 원님 부임 축하연을 베풀어 주었다고 한다.
그 고을 어른들의 모임인 노계소에서도 원님 부임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고 선물을 주는 차례가 되었다. 노계소 회장은 체와 챙이를 들고 나와 원님에게 부임 축하 선물로 주었다. 체와 챙이를 어떨결에 받게된 원님이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짓자 노계소 총무가 그 사연을 말했다.
"사또! 우리 고을은 전통적으로 체와 챙이를 부임 축하 선물로 드려왔습니다. 체는 농부들이 깨나 콩, 조 같은 작은 알갱이 곡식을 흙이나 부스러기 같은 것과 골라내는 데 쓰는 것인데 그 체 걸망 아래로 빠져나온 것들은 쓸모가 없어 모두 버리게 됩니다.
또한 챙이도 마찬가지로 챙이에 담은 곡식 알맹이를 잘 여문 것과 쭉정이를 골라내기 위해 챙이를 까불어서 쭉정이와 부스러기를 버립니다. 그래서 사또에게 올라온 백성의 민원은 체에 걸러내듯 말고 통째로 받아 살펴보고, 토호들의 민원은 챙이로 까불어 검불 걸러내듯 해야 한다는 뜻으로 두 가지를 부임 선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후 고을 관청 출입문 옆에는 체와 챙이가 항상 걸려 있었고, 관솔들은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그걸 보고 백성의 여론은 걸러 듣지 않고 토호들의 여론은 거르고 걸러 진실만을 받았다고 한다.
고을 쇠락의 촉매제는 여과 장치 고장난 일방통행이며, 유유상종 공동체가 날로 불려 나가는 몸집이란 교훈을 남긴 구전이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