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완주·전주 행정통합을 둘러싸고 찬성측과 반대측 간의 홍보전이 갈수록 치열하다. 찬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면서 갈등이 정점을 향해 치닫는 분위기다.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돼 오던 양측 활동이 이달 들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완주군의회에 이어 완주군은 지난달부터 13개 읍·면을 돌며 전주시와의 통합에 반대하는 당위론을 설명하고 예산확보의 허구성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의 내용으로 주민설명회를 가졌다. 그러더니 최근 완주·전주 통합 반대 단체와 완주지역의 도의원, 군의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전주시청 광장 앞에서 통합 반대 시위까지 벌였다.

완주군의회 의원들·반대 단체 회원들 팻말 들고 거리로…”벌써 선거철 돌아왔나?”

완주군의회(의장 유의식)는 20일 오전 전주시청 앞에서 ‘완주·전주 통합 반대 출근길 캠페인’을 열고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사진=완주군의회 제공)
완주군의회(의장 유의식)는 20일 오전 전주시청 앞에서 ‘완주·전주 통합 반대 출근길 캠페인’을 열고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사진=완주군의회 제공)

완주지역 도의원과 군의원 11명 전원은 완주·전주통합반대위원회 소속 회원 40여명과 함께 20일 전주시청을 찾아 '군민 동의 없는 일방적인 통합을 반대한다'며 팻말을 들고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마치 선거철이 돌아온 듯한 착각을 하게 할 정도였다.

이들은 '통합이 이뤄지면 6,000억원이 넘는 전주시의 지방채가 완주군민들에게 전가돼 지방 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홍보와 설득에 대대적으로 나섰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유희태 완주군수도 2주간 진행한 '완주·전주 행정통합 찬반 바로 알리기' 활동의 경과 등을 밝히며 수시로 기자회견과 간담회를 실시하고 있다. 유 군수는 특히 전주와의 통합 반대를 명분으로 언론에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앞서 완주군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읍·면 단위 주민설명회를 열어 군민들과 소통에 나서는 등 1마을 담당제를 활용해 공무원들이 직접 경로당과 마을을 방문, 리플릿을 배부하고 대화와 설득에 나섰다.

이에 질세라 우범기 전주시장도 완주·전주 통합 찬성 단체와 함께 출근길 캠페인에 나섰다. 전주시내 거리에서 우 시장과 50여명의 회원들은 노란 유니폼과 큰 팻말을 들고 '완주·전주 통합’을 외치며 범시민 출근길 통합 캠페인을 전개한 모습이 마치 선거운동을 펼치는 것과 흡사해 보였다.

‘불통' 딱지 전주시장, 출근길 손 흔들며 캠페인…”통합엔 저토록 적극적이라니” 시민들 '의아'

우범기 전주시장이 22일 아침 서전주아울렛 인근 도로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완주·전주 통합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다.(사진=전주시 제공)
우범기 전주시장이 22일 아침 서전주아울렛 인근 도로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완주·전주 통합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다.(사진=전주시 제공)

이 행사는 완주·전주 통합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시민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고 하지만 우 시장이 직접 나서 시민들에게 통합의 필요성과 기대 효과를 설명하며 참가자들과 함께 팻말을 흔드는 장면은 영락없이 선거철 흔히 보아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시민들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전주천 주변의 무차별 나무 베기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의 들끓는 목소리에도, 시청사 차벽 설치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거센 저항이 이어질 때도, 시민축구단이 이대로 주저 앉지 않게 도와달라고 외치며 해체될 때도,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전주시 드론축구 사업 문제점들과 꼬리 자르기 논란이 계속될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해 '불통'의 딱지가 붙은 전주시장이 이토록 적극적인 모습에 시민들은 오히려 의아해하는 눈치다.

앞서 우 시장과 유 군수는 지난 5일, 6일, 7일 3일 연속 KBS 전주방송총국과 전주MBC, JTV전주방송에서 완주·전주 통합을 주제로 양자 공개토론회를 실시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예상대로 극명한 이견을 보인 토론회는 양 지역 통합 보다는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 행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지극히 정치적 이해타산을 앞세우거나 지나치게 개인 감정을 내세운 토론에 그쳐 실망을 안겨줬다는 평가가 높다.

토론회 내내 두 단체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전주시장은 통합을 주민투표로 결정하고 존중하자고 제안한데 반해 완주군수는 투명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만일에 반대가 찬성보다 높다면 통합 절차를 중단하고, 만일에 찬성이 높다면 그것은 법에 따라서 갈 수 있지 않느냐고 맞섰다.

심지어 완주군수는 ”전주시청을 도청으로 이사하고, 도청을 만경강으로, 전주시청을 한옥마을과 연계해 문화예술타운을 만든다면 전라북도의 미래 그림이 달라질 것“이라며 ”도지사께서도 이 사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상생사업으로 추진했으면 한다”고 제안해 사실상 통합에 전혀 의지가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런데도 판박이 질문과 답변을 지역 방송 3사가 3일 연속 내보내 실망과 피로도를 높이는데 그쳤다. 두 단체장의 상이한 입장을 재확인시켜준 것 외에 특별한 메시지나 합의점 도출 등 긍정적 효과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득권 지키기·지방선거 의식 ‘정치 행위’ 신물...'동상이몽' 이제 그만

KBS전주총국 8월 5일 방송 화면 갈무리
KBS전주총국 8월 5일 방송 화면 갈무리

마치 900여년 전 중국 남송시대 전국을 지배했던 '동상이몽(同床異夢)'에 사로잡힌 형국을 떠오르게 할 만큼 완주·전주 통합을 둘러싼 양 단체장을 비롯한 정치권은 같은 상황에서 같은 걸 보면서도 서로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웃프게 한다.

남송 시절의 학자 진량(陳亮)이 쓴 ‘여주원회서(與朱元晦書)’의 한 구절에서 유래된 ‘동상이몽’은 당시 계속된 전쟁 상황에 내몰린 모든 국가들 간에 동맹과 배신이 난무하자 같은 잠자리에서 잠을 자도 제각각 다른 꿈을 꾸었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훗날 겉으로는 손을 잡고 화목한 모습을 보여 줘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함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경우를 빗대어 사자성어로 쓰이게 된 ‘동상이몽’이 지금 전주·완주 통합 문제를 놓고 벌이는 찬반 단체들은 물론 양 지역 정치권 모습과 흡사하다.

더구나 양 지역에서 겉으로는 찬반의 목소리를 내며 같은 행동을 할지라도 각기 속으로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 행위를 하는 경우를 그동안 수없이 보아왔다. 1997·2007·2013년 세 차례에 걸쳐 30여년 동안 통합이 추진됐지만 번번히 무산된 것도, 진정성 있는 공론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 만의 동상이몽, 이제 신물이 날 때도 됐건만 기득권과 선거 앞에선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기 일쑤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깨어 있는 의식으로 극복해 나가는 길 외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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